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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문화

58. 죽음 그리고 지장탱화

by 혜림의 혜림헌 2025. 1. 18.

죽음은 항상 우리 곁에 있지만 무겁고 피하고 싶은 주제입니다.

거의 모든 종교는 사후세계를 말하는데 죽음이란 과연 무엇일까요?

의학적으로 인간의 죽음은 맥박과 호흡의 완전 정지를 말합니다.

현대에 들어 뇌가 기능하지 않는 뇌사(腦死)도 죽음이라고 합니다.

즉 심장과 허파, 뇌 중 어느 하나의 작동 불능 상태가 죽음입니다.

그런데 육체는 죽었어도 숭고한 무엇(영혼)이 남아 있다고 합니다.

영혼(정신)이 있다지만 죽은 육신은 모든 자극에 반응이 없습니다.

 

미국의 저명한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이 말합니다.

- ‘천국도 없고 사후세계도 없다.’

- ‘천국은 죽음을 두려워하는 이들을 위한 동화(童話)일 뿐이다.’

- ‘뇌가 깜빡거림을 멈추면 그 이후엔 아무것도 없다.’

- ‘뇌는 부속품이 고장 나면 작동을 멈추는 컴퓨터와 같다.’

- ‘고장난 컴퓨터를 위한 천국이나 사후세계는 없다.’ !

 

그렇지만 상당수 호모사피엔스는 영혼의 영원불멸을 믿습니다.

아니 그렇게 주장하거나 믿고 싶어 하고, 믿고 있다고 보여집니다.

지은 업대로 윤회하여 다시 태어난다는 주장이 있습니다.

인도나 네팔, 부탄 등의 힌두교가 그러한 부류입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아니지만 사찰의 스님들도 윤회를 강조합니다.

기독교에서는 야훼와 예수를 믿으면 죽어서 천당에 간다고 합니다.

 

종교 지도자가 말합니다.

현재는 힘들게 살더라도 계율을 지키고, ()에게 재물을 바치고,

봉사하고 기도하는 삶을 산 후 죽어서 천국에 가라!’고 말입니다.

그렇지만 지금 이 순간 부자이고 행복한 천국이면 좋지 않습니까?

누군가는 살아 천국이고 신도들은 죽어서 천국에 가야 합니까?

 

나아가 일부 종교 지도자들의 행위에서 그들이 과연 신의 존재와 사후세계, 인과응보라는 가르침을 믿는지 의심스럽기도 합니다.

종교 지도자의 행태가 보통사람의 상식을 벗어나지 말기 바랍니다.

그럼에도 나는 종교의 위대함을 믿고, 종교 지도자를 존경합니다.

 

지장보살은 인도의 지신(地神)이었습니다.

인간이 가장 두려움을 느끼게 되는 질병의 고통과 사후세계 처벌의 고통으로부터 우리를 구해주는 인기 짱인 보살입니다.

 

지장보살은 머리에 두건을 쓰거나 삭발한 민머리의 모습입니다.

고려시대에는 두건을 두른 모습이 일반적이었습니다.

조선시대 후기 들어 스님의 모습으로 변화합니다.

오른손은 석장(錫杖)을 들고 왼손은 보배구슬을 잡고 있습니다.

지장보살 좌우에는 도명존자와 무독귀왕이 협시합니다.

이 외에 명부시왕과 동자, 판관, 녹사, 장군이 함께합니다.

명부시왕은 각각의 세계를 담당하는 염라대왕 등 10왕을 말합니다.

동자는 사자 즉 연락관으로 시왕마다 1명씩 10명이 배치됩니다.

판사 역할을 하는 판관이 2명이며, 법원 주사처럼 기록을 담당하는 녹사 2, 법정질서를 담당하는 경위 역의 장군 2명이 있습니다

이들 지장탱화의 도상인물을 합하면 29명이 됩니다.

때에 따라 동자가 2위만 서 있거나 사자 2명이 추가되기도 합니다.

어찌 법원의 재판정 모습과 비슷하지 않습니까?

 

지장탱화는 독존도나 삼존도, 삼장탱화로 분화 발전합니다.

독존도는 두건을 쓰고 양손에 석장과 여의주를 든 모습입니다.

삼존도는 지장보살과 도명존자 무독귀왕으로 단순하게 구성됩니다.

삼장탱화는 하늘세계를 그린 천장(天藏) 탱화, 현상계를 그린 지지(持地) 탱화, 사후세계를 그린 지장(地藏) 탱화로 분화됩니다.

 

지장전의 지장탱화와 시왕전의 시왕탱화는 구분이 애매합니다.

지장보살이 주존이라는 점에서 같은 성격의 탱화라고 할 수 있지만 중생구제가 중심이 되면 지장전 지장탱화라고 합니다.

이에 비해 죽은 이에 대한 명부의 심판이라는 교훈이 중심이 되면 시왕전 시왕탱화라고 이해하면 되지 않을까 합니다

강화 전등사 명부전, 여주 신륵사 명부전, 상주 북지장사 명부전, 고성 옥천사 지장전 탱화가 유명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