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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문화

28. 부처님 말씀 저장고 대장전(大藏殿)

by 혜림의 혜림헌 2024. 6. 22.

말은 내뱉는 즉시 흔적도 없이 사라집니다.

인간이 가진 내면의 마음은 관심법으로 알 수 있는 게 아닙니다.

현생인류는 오래전부터 어떻게 하면 내 마음을 원활하게 전달할 수 있을까를 끊임없이 탐구한 결과로 오늘의 번영을 이루었습니다.

그 고민의 결과가 말과 그림에서 기호, 문자로 발전하게 됩니다

 

부처님께서는 말 없는 말 즉 삼처전심(三處傳心)으로 깊은 뜻을 전하기도 하였습니다만 대부분은 중생들의 근기에 맞는 대기설법을 통하여 어리석음에서 깨어나도록 교화하셨습니다.

45년간 중생들을 교화하시던 부처님께서 열반에 들게 됩니다.

슬픔에 잠겨있던 마하가섭은 부처님의 가르침이 제멋대로 해석되어 전해지고 있음을 알고 이를 종합적으로 정리할 필요성을 느낍니다.

이에 오백명의 아라한을 칠엽굴에 모아 부처님의 말씀을 정리하니 이름하여 오백결집 또는 제 1차 결집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결집된 부처님의 말씀을 경전이라고 합니다.

더하여 출가자들이 지켜야 할 계율을 정한 율장, 경전의 깊은 뜻을 해설한 논장을 총칭하여 경··론 삼장, 일체경, 대장경으로 부르니 그 수가 팔만사천에 이릅니다.

구전되던 대장경은 BC 1세기 무렵 패엽(패다라 나무줄기)에 새겨 전승되고, 중국에서 한문으로 번역되어 한반도까지 전해집니다.

 

고려 현종 1011년 거란족의 침입으로 나라가 위기에 처합니다.

이에 부처님의 힘(佛力)을 빌어 나라를 지키겠다는 간절한 마음을 모아 대장경을 판각하니 이름하여 초조대장경입니다.

부인사에 보관하던 초조대장경판은 1232년 여몽전쟁에서 한반도를 유린한 몽고군의 방화로 안타깝게 불에 타버리고 맙니다.

무신정권의 실권자인 최우는 몽고에게 항복하기를 거부하고 불교의 힘으로 국난을 극복하기 위해 대장경을 판각하기로 결정합니다.

임시수도인 강화도에 대장도감을 설치하고, 15(12371251) 8만 매를 판각 하니 해인사에 보관되고 있는 고려대장경판입니다.

 

대장전(大藏殿)은 부처님의 말씀이 새겨진 경판이나 이를 인쇄한 서책 즉 경전을 봉안하는 전각을 말합니다.

경판이나 경전은 불교의 삼보(三寶) 가운데 하나인 법보(法寶)이기 때문에 해인사 장경각은 법보전, 수다라전이라 명명되었습니다.

대장전에는 법신불인 비로자나불이나 직접 법을 설한 석가모니불을 중앙에 봉안하고 서가를 설치하여 경전을 보관하고 있습니다.

 

예천 용문사 대장전은 윤장대를 설치하여 경전을 보관하고 있지만 김제 금산사는 대장전 안쪽 벽을 팔상도로 장식하고 있습니다.

강남 봉은사는 경판을 보관하는 전각에 판전(板殿) 이라는 편액을 걸었는데 추사 김정희의 칠십과로병중작(七十果老病中作)입니다.

례 화엄사 각황전은 당초 벽을 석각(石刻) 화엄경으로 장식했다고 구전되고 있지만 화재로 파손되어 일부 조각만 따로 보관중입니다.

 

합천 해인사는 고려대장경을 봉안하고 있는 법보사찰(法寶寺刹)로 장경각 문을 지나면 수다라장과 법보전 편액을 단 장방형의 대장경 판고 2동과 동서 사간전에 총 81,352매의 경판을 보관중입니다.

경판고는 통풍, 방습 등에 선조들의 과학적 지혜가 담겨 있습니다.

바닥은 흙과 소금, 숯을 다져 습기를 막아주고 벽에 설치된 살창도 위아래의 크기를 달리하여 배기, 환풍, 제습, 가습이 원활하도록 과학적으로 축조되었다고 합니다.

 

최근 일본은 대장경의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추진하고 있습니다.

실제 일본 불교는 에도막부 이전부터 대장경판과 대장경을 구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 다수의 대장경전을 소장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들은 희귀한 송나라와 원나라, 조선시대에 인쇄된 대장경입니다.

조선이 억불 정책으로 불사리를 모아 명나라에 보내고, 대장경판을 홀대할 때 일본은 경전(대장경) 수집에 열을 올린 결과입니다.

오늘날에도 솟대나 장승 등 전통문화 관련 사업에 종교적 신념을 내세워 반대하는 일이 끊이지 않으니 말해 무엇하겠습니까?

신념이 달라도 대장경은 소중한 유산이며, 귀한 가르침입니다.

(예천 용문사 대장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