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찰에는 일주문부터 금강문, 천왕문, 불이문이 정연하게 연이어 있으니 이를 통칭하여 산문(山門)이라고 합니다.
부처님 뵈러 가는 길목에서 처음 만나는 문이 일주문입니다.
보통 두 개의 기둥 위에 벽이나 문짝도 없이 거대한 지붕을 얹고서 넘어지지 않고 서 있는
일주문을 바라보며 갖게 되는 의문입니다.
왜 문짝도 없는데 문이라 하지? 기둥 두 개로 넘어지지도 않네?
문(門)은 내 소유물, 나를 지키는, 나만을 위한 영역으로 폐쇄된 경계이지만
달리 보면 나와 남을 연결하는 통로이기도 합니다.
문을 닫고 나만의 공간에서 자유를 만끽할 수는 있겠지만 아쉽게도 인간뿐만 아니라
동식물도 혼자서는 살 수 없는 게 현실입니다.
전쟁터 같은 이 사바세계에서 혼자만의 시간을 누리며 살고 싶다고 문을 닫을 수 있지만
때때로 열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습니다.
너와 나를 위하여 때로는 닫고 때로는 여는 지혜를 기대합니다.
일주문은 기둥이 한 줄로 서 있는 문이라 일주문이라고 합니다.
문을 경계로 문 밖이 인간계(俗界), 문 안이 진리계(眞界)입니다.
이 문을 들어설 때면 속세의 사악한 욕심을 버리고 오직 부처님 즉 진리에 귀의하겠다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현상적으로 우주 삼라만상은 각기 따로 존재하는 듯 보이지만
실제 본질을 사유해 보니 서로 의지하여 생겨날 뿐 둘이 아닙니다.
나와 남, 삶과 죽음, 부처와 중생, 선과 악, 지혜와 번뇌, 절집과 인간세상, 시간과 공간, 생사와 열반이 둘이 아닙니다.
일주문이 사찰의 문으로 등장한 때는 조선중기 그러니까 16세기 이후라는 설이 학자들의 대체적인 의견입니다.
왕릉이나 사당, 서원, 향교에는 붉은 기둥에 나무를 걸치고 홍살로 마무리한 홍살문이
일주문과 유사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고대 인도의 사원 입구에 토라나가 있다면, 중국에는 패루(패방)가 있고, 일본의 신사에는 도리이가 세워져 있습니다.
이들 모두 ‘여기서부터 신성한 곳’임을 알리는 점에서 비슷합니다.
오늘날 일주문 기둥의 크기는 상상을 초월하여 커지고 있습니다.
일주문의 기둥이 자꾸 굵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통도사, 해인사, 송광사 등 삼보사찰을 비롯한 교구본사 일주문은 사찰의 위상에 맞게 우람하게 지어져 있습니다.
사찰을 비롯하여 우리 사회가 그만큼 풍요로워졌다는 뜻입니다.
경제력의 크기가 대형건축물을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일주문의 지붕은 맞배지붕 형태가 많고 팔작지붕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는데 대표적으로는 범어사 일주문이 있습니다.
일주문에는 00산 00사, 00대본산, 00제일가람, 00제일선원으로 표기된 편액을 달고 있습니다.
특히, 선(禪)이나 교(敎) 등 사찰의 성격과 지향점, 지역의 특성이 반영된 편액을 달아 사격을 표시하기도 합니다.
일주문 기둥의 주련에는 ‘깨달음을 지향하는 절집에서 알음알이를 내지 마라’는 뜻의
‘입차문래(入此門來) 막존지해(幕存知解)’나 경전 또는 사찰의 특징을 나타내는 글귀를 새기고 있으니
즐겨 해석해 보기를 권합니다.
일주문에 들어설 때는 불전을 향해 합장하고 반 배를 합니다.
무엇보다도 마음을 모아 수행하는 자세로 사찰을 찾으라 합니다.
인과법(因果法)을 믿고 선행을 닦아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세상을 만들겠다는
굳건한 신심과 서원을 세워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그러나 나는 감히 말합니다.
신심과 서원이 없어도 사찰의 환경을 훼손하지 않는다면 부담 없이 편하고,
친근하게, 일상처럼 사찰을 찾는 이들이 많았으면 합니다.
그냥 편하게 사찰의 일주문의 문턱을 넘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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