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하촌(寺下村)에는 왜 식당이 많을까?
사하촌은 글자 그대로 ‘사찰 아랫마을’의 한자식 표현입니다.
위대한 경세가(經世家)인 부처님의 음덕으로 살아가는 마을입니다.
사찰에 기대어 사는 속세 사람들의 치열한 삶의 현장입니다.
세상살이가 다 그렇듯 그들은 먹고 살기 위해 사찰의 전답을 짓고,
붓, 먹, 바루, 목탁, 한지 등 사찰용품을 만들어 삶을 꾸렸습니다.
주로 핍박받는 농촌을 그린 작가 김정한은 1936년 1월 9일부터 23일까지
조선일보에 단편소설 ‘사하촌’을 연재합니다.
성동리에서 보광사의 소작농으로 살아가는 사람들과 주변 민초들의 처절한 삶을 실감 나게 그린 소설입니다.
가뭄이 들자 가난한 농민들의 생존을 위한 물싸움이 시작됩니다.
스님의 권유에 두어 마지기 논배미를 사찰에 시주했던 작인은
사찰 살림살이를 책임진 장주스님의 물 욕심을 보며 후회를 합니다.
학교를 그만두고 불목하니가 된 아들은 산림 감시원의 자비 없는 단속을 피하다
바위에서 떨어져 어린 나이에 세연을 끊게 됩니다.
민초들의 간절한 기우제에 이어 보광사에서 괘불(掛佛)까지 모시고
기우불공을 올리지만 비는 오지 않으니 농사를 망쳐 버립니다.
농사를 망쳤음에도 자비를 강조하는 보광사는 소작료를 인하하지 않고,
빌린 돈을 갚지 못한 소작인들의 세간살이까지 압류합니다.
스님들이 그토록 설파하던 부처님의 자비광명은 산하대지를 밝게 비출지는 몰라도
작인에겐 그저 남의 일이었습니다.
입만 열면 상구보리 하화중생을 외쳐대던 자비도량 보광사도
속세 지주와 다름없음을 보여주며 소설은 막을 내립니다.
관광자원이 부족했던 6~70년대 사찰은 최고의 관광지였습니다.
사람과 돈이 모이니 돈을 따라 식당과 여관이 지어지게 됩니다.
물론 고운사나 봉정사처럼 고즈넉함을 간직한 사찰도 있습니다.
관광산업에 목을 매는 오늘의 사하촌은 어떠합니까?
깔끔하게 정비된 주차장을 낀 사하촌에서는 파전과 막걸리,
통돼지 바비큐 굽는 냄새가 대웅전까지 들어와 부처님 코를 자극합니다.
뽀오얀 닭백숙 국물이 불살생을 외치는 자비 도량에 흘러갑니다.
꿈틀대는 속세의 욕망이 그대로 투영되는 곳이 사하촌입니다.
파전과 막걸리는 고단한 중생을 달래주는 부처님의 자비입니다.
굳이 직접 캔 국산임을 강조하는 산야초 할멈에는 걍 속아줍니다.
시·군청과 공원관리공단은 주차료 수입에 목을 맵니다.
그러니 염주 등을 파는 불교용품점은 왠지 주눅이 듭니다.
밥은 보약이 아니라 부처님이요! 하나님이요! 목숨입니다!
소작농으로 또는 불구(절에서 사용하는 용품)를 제작하면서 사찰에 기대 살던
사하촌의 민초들도 대부분 식당으로, 노래방으로 업종을 전환하는 방법으로
밥을 찾아 절집의 품을 벗어나고 있습니다.
사하촌 세간에게 밥이 부처님이더냐고 물을 일이 아닙니다.
부디 사찰마다 상구보리 하화중생의 보살도를 행하기 바랍니다.
세간 사하촌과 출세간이 공존하는 통섭의 지혜를 바라고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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