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불교문화

3. 시찰가는 다리! 월천(越川)공덕 하였는가?

by 혜림의 혜림헌 2023. 12. 28.

사하촌을 지나 사찰에 가려면 다리를 건너야 합니다.

이제는 거의 사라졌지만 요금소와 일주문을 지나 본전에 닿으려면

홍교, 극락교, 해탈교, 피안교, 금강교 등의 다리를 만나게 됩니다.

다리가 여럿인 이유는 현실적으로는 우리나라의 산하가 골이 깊어 건너야 할 개울이 많기 때문입니다.

상징적으로는 고통 바다를 건너서 저 언덕에 도달하기(바라밀다)를 바라는 중생들의 서원이

그만큼 크고 간절하기 때문입니다.

 

21세기 들어서 첩첩산중 작은 개울에도 튼튼한 콘크리트 다리가 가설되었지만

불과 수십 년 전만 해도 다리는 귀한 존재였습니다.

등굣길 차가운 얼음물에 발을 적시는 고통을 면해준 다리입니다.

자동차, 기차를 이용한 대규모 물류 이동을 가능케 한 다리입니다.

섬과 육지, 섬과 섬을 연결하여 삶을 변화시킨 다리입니다.

 

서산대사가 지었다는 회심곡은 일념으로 염불하고 나쁜 행동을 하지 말라는 교훈으로

불교와 도교, 유교를 아우르는 내용입니다.

회심곡에서 저승의 왕인 염라대왕이 영가(靈駕)에게 가장 먼저 묻는 말이

이승에서 살아생전에 활인공덕(活人功德) 하였느냐?’입니다.

즉 사람의 목숨을 구하는 선행을 하였느냐?’고 묻고 있습니다.

다음으로 묻는 말이 월천공덕(越川功德) 하였느냐?’ 입니다.

개울에 징검다리라도 놓아주는 선행을 했느냐고 묻고 있습니다.

월천공덕을 지으면 자손들이 말을 타고 다니는 벼슬을 한답니다.

7~80년대 아주 소규모의 교량 준공식에도 국회의원이며, 군수가 참석하여

준공식을 하니 민초들은 그들의 공덕비를 세워줍니다.

 

그러나 오늘을 사는 중생들은 월천공덕을 짓기 위해 과한 노력을 하지 않아도 되고

군수나 국회의원 공덕비를 세우지 않아도 됩니다.

우리가 내는 세금이 도로를 닦고 다리를 놓는 데 쓰이니 말입니다.

 

월천(越川)은 욕망의 세계에서 부처님의 세계에 든다는 뜻입니다.

그 옛날 돌덩이 몇 개 굴려놓은 징검다리나 농다리, 나무를 베어다 얼기설기 만들어 놓은 섶다리도

그저 고맙게만 느껴졌습니다.

오늘날의 우리들은 아치교, 현수, 사장교, 트러스트교 등 최 첨단 기술력으로 건설된 다리를 건너며

고마움을 가지지는 않습니다.

우리가 낸 세금으로 국가가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 사찰을 대표하는 다리로는

경주 불국사 청운교·백운교와 순천 선암사 승선교, 송광사 능허교, 여수 흥국사 홍교, 고성 건봉사 극락교 등이 꼽히는데, 하나같이 잘 다듬은 돌을 사용하여 반원형의 무지개(아치) 모양으로 만든 다리입니다.

독특한 다리 모양은 각각의 이름과 별개로 홍예교(虹蜺橋)라 하는데

무지개 홍()과 무지개 예() 자는 일곱 빛깔 무지개가 생각나는

아름다운 다리를 표현하는 적절한 단어라고 생각됩니다.

홍예교는 아치형 구조가 갖는 견고성과 아름다움이 조화롭습니다.

 

홍예교 아래에서 다리를 올려다보면 가운데에 용의 머리모양을 한

돌출된 귀신상이 물을 바라보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 이름을 공하(蚣蝦)라 하는데 이는 용의 아홉 아들 가운데 하나로

물을 좋아해 다리 아래로 들어오는 나쁜 기운을 막고 있습니다.

 

용의 아홉 아들 즉 용구자(龍九子)를 소개 합니다.

첫째 비희(贔屓)로 비석을 받치는 거북 모양의 귀부(龜趺)입니다.

둘째 이문(螭吻)은 높은 곳을 좋아해 지붕의 치미(鴟尾)로 씁니다.

셋째 포뢰(蒲牢)는 소리가 커 범종을 치는 당목(撞木)으로 씁니다.

넷째 폐안(狴犴)은 호랑이의 위력이 있어 감옥 문에 달아 놓습니다.

다섯째 도철(饕餮)은 먹고 마시는 일을 좋아해 솥뚜껑에 그립니다.

여섯째 공하(蚣蝦)는 물을 좋아해 다리 밑에서 잡귀를 막습니다.

일곱째 애자(睚眦)는 살생을 자주 해 칼등이나 칼자루에 그립니다.

여덟째 산예(狻猊)는 연기와 불을 좋아해 향로를 장식합니다.

아홉째 초도(椒圖)는 잘 숨고 문을 잘 닫아 문고리에 붙입니다.

 

사찰 가는 다리를 건넌다 함은 속세에서 바라밀다(彼岸)에 들어

학업, 승진, 사업 등 세속의 출세와는 거리를 둔다는 의미입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찰에서는 축원문을 낭독하고, 입시기도를 하고,

사업이 번창하기를 빌고 있으니 이런 모순이 없습니다.

 

따지고 보면 세상사 무상(無常)이니 고정된 실체가 없습니다.

내가 공()’하고 ()이 공하고, ‘공도 공합니다.

()도 공()’ 하니 세속적 성공을 위해 벽사(辟邪위호(衛護소재(消災)

빌고 비는 행위를 탓할 일만은 아닙니다.

오늘도 열심히 행동으로 기도합시다.

'불교문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5. 사찰의 검문소 ! 금강문(金剛門)  (0) 2024.01.12
4. 사찰의 위병소! 일주문(一柱門)  (0) 2024.01.04
2. 사찰 아랫마을(사하촌)  (3) 2023.12.21
왜 사찰에 가는걸까?  (0) 2023.12.15
53 선지식에 대하여  (0) 2022.05.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