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여 회에 걸쳐 금산사의 이모저모를 살펴보았습니다.
다만 회주스님이 주석하시는 만월당과 서래선원, 최근에 지은 학림선원, 템플스테이관, 음식체험관, 요사는 살피지 않았습니다.
이들 건물은 예경 기타 관람용이 아닌 지극히 실용적 건물입니다.
그냥 정리하자니 다소 아쉬움이 있어 모악산 주변을 살펴봅니다.
-1. 먼저 귀신사(歸信寺)를 갑니다.
금산사에서 가까운 비구니 사찰 귀신사는 금산사의 말사입니다.
귀신사는 그 이름에서 귀신(鬼神)이 떠올라 기억이 선명해집니다.
모악산 서쪽 귀신사는 의상이 국신사(國信寺)로 창건했다 합니다.
국신사가 귀신사로 개명된 시기는 9세기 초로 이유는 불명합니다.
최치원의 ‘법장화상전’에 화엄십찰의 하나인 국신사로 표기됩니다.
철감선사 도윤(道允 798~868)의 귀신사 출가기록이 나옵니다.
2002년 전북대 박물관 조사에서 ‘鬼神寺’ 명문 기와도 출토됩니다.
귀신사는 고려 원명국사가 중창하여 고려 말까지 번성합니다.
15세기 중후반 들어 쇠퇴하였지만 16세기 중반 사세를 회복하다가 임진왜란을 맞아 폐허가 된 걸 17세기에 중창하였다고 합니다.
귀신사 문화재는 보물 제82호인 대적광전과 소조비로자나삼불좌상, 전북 유형문화재인 삼층석탑, 승탑, 석수(石獸) 등이 있습니다.
귀신사는 부석사, 화엄사, 통도사, 해인사, 범어사, 보원사, 갑사, 옥천사 등과 함께 화엄십찰 중 하나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화엄십찰은 문헌별로 다른데 화엄학이 융성한 사찰로 이해됩니다.
‘고려사’에는 1376년(우왕 2) 왜구 300여 기(騎)가 주둔합니다.
김시습(1435~1493)이 탑과 비석이 무너진 귀신사를 보고 귀신사 ‘허(墟)’라는 시를 지어 전하니 사찰의 형편을 알 수 있습니다.
덕기(德奇)는 임란으로 폐허가 된 절을 1624~1633년까지 10년 동안 중창하면서 ‘옛 터를 옮겨 새 터에 복거하였다.’고 합니다.
1715년 팔상전(八相殿)을 건립하고 1823년 대적광전을 수리할 때 2층 법당이 단층으로 축소되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1873년 춘봉(春峯)의 중창 불사 후 그 이름이 구신사(狗脣寺)에서 귀신사로 바뀌었으니 이름과 관련된 사연이 많은 절입니다.
대적광전은 귀신사를 대표하는 전각입니다.
기단은 경사지에 자연석을 쌓아 터를 다듬은 다음 외벌대라 부르는 기다란 돌을 둘러 만들었고, 주초석은 자연석 덤벙주초입니다.
앞면 5칸, 옆면 3칸의 민흘림 기둥 맞배지붕이 특이하게 보입니다.
아마 앞면 3칸 규모의 건물을 5칸으로 나눈 결과가 아닌가 합니다.
즉 문 두 짝을 달 정도의 주간(柱間)은 어칸, 협칸, 퇴칸간 간격이 30㎝ 가까이 줄어드니, 기둥과 창방으로 구분되는 세로면은 기다란 직사각형을 이루어 건물 모습이 수직으로 길게 보입니다.
더하여 풍판도 벽면에 붙을 정도로 장착돼 우주에서 도리의 뺄목이 충분히 뻗어나지 못하니 건물은 더욱 높게 보여집니다.
일반의 전각은 옆면 중앙 주간은 길게 하고, 앞뒤 주간은 짧은데 대적광전 뒤편 주간은 중앙보다 3자 이상 긴 모습도 특이합니다.
내부 기둥도 평주와 관계없이 앞뒤 4개씩 8개를 고주로 세워 마치 내외기둥이 구별되는 중층 건물과 유사한 평면을 보이고 있습니다.
옆면 평주와 내진주의 배열에서 팔작지붕을 맞배지붕으로 변형시킨 사실이 확인되는데 중수기의 ‘2층 법당’이라는 기록과 일치합니다.
대적광전은 중수과정에서 알려지지 않은 이유로 중층에서 단층으로 개조되었는데 이는 목재의 수급 등 사찰 재정과 관련이 깊습니다.
공간포는 앞뒤 주간마다 1개씩 두었는데 뒷면 퇴칸은 없습니다.
처마는 내외 2출목 구조가 받치는데 앞면은 겹처마, 뒷면은 홑처마입니다만 특히, 앞면의 초·이 제공의 살미가 뾰족한 앙성형입니다.
살미 위는 연봉을 조각하였는데 이는 조선 후기 양식으로 봅니다.
가운데에는 두 짝 빗살문을, 그 외 칸에는 외짝 빗살문을 달았으며 뒷면에는 가운데에만 두 짝 빗살문을 달고 나머지는 판벽입니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2층에서 단층으로 고쳐 지으면서 작은 부재도 알뜰히 사용한 검약의 전각이라고 이름 짓고 싶습니다.
대적광전에는 소조 비로자나삼존불이 봉안되어 있습니다.
가운데 지권인의 비로자나불, 왼쪽에 설법인의 노사나불, 오른쪽에 항마인촉지인을 한 석가모니불은 모두 진흙으로 빚은 토불입니다.
머리가 천장에 닿을 정도로 건물과 어울리지 않는 대형의 삼존불은 닫집을 설치하지 못할 정도이니 우물천장으로 마무리 하였습니다.
극한의 비대칭을 보이며 전각에 꽉 차는 대형불상이 봉안된 이유를 알 수 없지만 기존 2층 법당의 불상이 그 자리를 지켰다고 봅니다.
대적광전 이외에 영산전의 소조 석가삼존과 나한상, 명부전 소조 지장보살 좌상과 시왕상 등도 특이하게 진흙으로 빚은 소조입니다.
귀신사 경내의 볼만한 문화재로는 귀신사 삼층석탑과 석수(石獸)가 있으며, 가까이에 또 다른 삼층석탑과 논 가운데 승탑이 있습니다.
과거 귀신사 사역이 청도마을을 아우르는 규모였다는 방증입니다.
먼저 삼층 석탑은 대적광전 뒤편 언덕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탑이 주불전 앞에 위치한다는 상식과 맞지 않습니다.
귀신사 창건 당시 조성된 탑은 제자리를 지켰으나, 전각들은 알 수 없는 사유로 위치를 이동하였다고 보여집니다.
탑은 신라시대의 전형적인 탑으로 지붕돌의 선이 매우 빼어납니다.
탑 앞에 자리한 돌짐승(石獸)은 등에 남근(男根)과 유사한 석주가 얹혀 있는데 민간의 남근숭배 사상과 관련이 있다고 보여집니다.
다만 석수와 석주가 어울리지 않아 원형이 아니었다고 보여집니다.
귀신사에서 농로를 따라 조금 올라가면 청도리 삼층석탑이 있는데 이는 산내암자에 조성된 석탑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전주에서 금산사로 가는 지방도에서 논둑길을 따라 조금 가다 보면 논 가운데에 다소 길쭉한 모습을 한 승탑이 있습니다.
승탑은 복련을 얹은 8각의 지대석 위에 왜소한 8각의 기단, 석등이 연상되는 받침돌, 몸돌과 지붕돌, 보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전체적으로는 소박하지만 가분수처럼 비대칭을 보입니다.
귀신사에 가면 석탑과 승탑을 향한 걸음을 잊지 마시라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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