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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 산 사

30. 방등계단과 나란한 오층석탑

by 혜림의 혜림헌 2026. 6. 20.

방등계단과 나란히 하는 보물 제25호 오층석탑을 알아봅니다.

당초 9층탑 이었다는 기록에 더해 탑의 체감비율과 옥개석을 보면 ‘6층 이상이었다.’는 주장을 다수 글에서 그냥 인용하고 있습니다.

그보다는 6층처럼 보이는 노반석에서 다층탑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197111월 석탑 해체 수리시에 발견된 모악산 금산사 오층석탑 중창기는 979(경종4)에서 981년 사이 탑 완공사실을 전합니다.

 

중창기는 과거불인 가섭불의 옛터를 중흥한 것!’이라고 합니다.

진표율사가 미륵전과 장육삼존불을 조성했다는 기록도 소중합니다.

세조의 명으로 경내의 낡은 설법전, 전각, 요사 10여 동을 1460년 시작해서 1461년까지 보수하고 단청했던 사실도 전해집니다.

1492(성종23) 915일부터 925일까지 탑을 해체보수 하는 도즁에는 향기가 나고 장육상이 땀을 흘렸다는 이적이 기록됩니다.

탑에 봉안된 석가여래 사리 5매와 정광여래 사리 2매 중 정광여래 사리가 나뉘어 3매가 되는 신비함을 만인이 친견했다고도 합니다.

이 밖에도 탑에는 료명, 학유스님이 원불을 조성하고 사리장엄구를 약 50일간 준비하여 1115일 매납하였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이때 참여한 시주자는 세조의 서자인 덕원군, 8명은 직책과 이름을 함께 적고, 주요인물 21명과 사찰 대중 200여 명도 전합니다.

 

197111월 석탑 해체 수리시에 발견된 사리장엄구를 봅니다,

장엄구는 동제 사리합과 작은 합 2, 청동 오층탑 1, 엽전 7, 8구의 불상과 동자상 1구 등이니 총 18점에 달합니다.

사리장엄구는 불상 숫자가 많고 작품성이 뛰어난 특징이 있습니다.

석탑에 불상을 봉안한 전통은 통일신라시기 황복사지 삼층석탑에서 발견된 이래 조선 후기까지 지속되었다고 보여집니다.

이 불상은 작게는 5에서 크게는 30크기라고 합니다.

30크기의 큰 불상도 드물지만 이들 모두 복장이 갖춰졌습니다.

탑의 몸돌과 지붕돌에서 고려 전기 석탑의 전형을 보여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