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산사 보제루에 들면 누 처마 끝으로 대적광전이 아련합니다.
1986년 12월 6일 전북일보는 대적광전의 화재 소식을 전합니다.
대적광전은 정유재란 때 소실된 후 조선 인조 13년(1635)에 98평 규모로 재건하여 1968년 12월 19일 보물 제476호로 지정됩니다.
세월을 견디던 전각은 1972년에 해체복원을 했으며, 1986년 11월 18일부터 실측조사를 하던 중 12월 6일 새벽 불에 타버립니다.
조선중기에 조성된 아미타불 등 5불과 6보살, 오백나한상을 비롯해 동자를 안은 관음상 벽화까지 화재로 모두 사라지게 됩니다.
화재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고 1994년 복원 불사를 완료합니다.
전각은 장대석 기단에 앞면 7칸, 옆면 4칸의 팔작지붕입니다.
앞면의 7칸 모두에는 빗살무늬를 한 열개문 두 짝을 달았습니다.
중앙은 어간문으로 사용중이고 나머지는 평상시에 사용하지 않으니 궁창이 장착된 광창(光窓)의 역할로 보면 되지 싶습니다.
옆면은 4칸으로 제일 앞쪽 툇간에 출입문이 한 짝 달려 있습니다.
기둥과 기둥 사이의 공간포는 6개 주간에 1개씩 두고, 중앙 칸에는 2개의 공간포를 두었는데 이는 편액을 염두에 두었다고 보입니다.
공포 구성은 주두·소로·첨차·제공을 짜 맞추고, 안팎에 각 이출목을 구성하여 우람한 전각의 위용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건물 내부는 마루를 깔고 뒷면에 6개의 기둥을 세웠습니다.
기둥 사이는 벽으로 만들고 그 앞에 불단을 설치하여 비로자나불을 중심으로 좌우에 좌불상 5위와 보살입상 6위를 봉안하였습니다.
보와 보 사이에 봉안된 불상 위에 화려한 닫집이 설치되었습니다.
둥그런 대들보는 앞면 평주에 3개의 충량을 올려 보를 걸었습니다.
휘어진 충량은 건물의 규모에 비해 다소 작은데, 이는 대형 불상을 1층 건물에 안치하는 데 따른 고려인 걸로 보여집니다.
따라서 불단 바로 위 천장은 1단을 높여서 끄트머리가 대들보 위의 충량에 바짝 붙도록 반자를 꾸며 층급천장을 만들었습니다.
이로 인해 건물 내부는 가득찬 느낌을 주고, 건물 외부도 웅장함을 잃지 않으면서 옆으로는 길게 보여 전체적으로 안정감을 줍니다.
대적광전 안에 봉안된 5여래와 6보살을 알아봅니다.
우선 지권인을 한 앉은 자세의 비로자나불이 가운데에 자리합니다.
비로자나불 왼쪽에는 역시 앉은 자세의 석가모니불과 아미타불이, 오른쪽에는 노사나불과 약사불이 자리합니다.
입상의 보살상은 비로자나불, 아미타불, 약사불을 협시하는 형태로 문수와 보현, 관음과 세지, 일광과 월광보살입니다.
금산사 대적광전에는 특이하게 5여래 6보살이 봉안되었습니다.
일반적으로 대적광전에는 비로자나불을 중심으로 삼신불(三身佛)을 봉안하여 화엄 연화장 세계를 구현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형식의 대적광전 불·보살상 봉안은 다양한 민중들의 바람을 반영한 힌국불교의 통불교(通佛敎)적 성격을 보여주는 예입니다.
부처님의 진리는 어느 하나의 사상이나 종파에만 속할 수는 없으니
화엄, 법화, 미타, 약사 신앙을 한 번에 구현한 금산사입니다.
왼쪽 벽의 신중탱화는 1991년 주지이던 월주스님의 주도로 불사를 하였으며, 월산스님의 증명(證明)으로 봉안하였습니다.
전각의 정면에는 대적광전(大寂光殿) 편액이 걸려 있습니다.
편액 글씨를 쓴 이는 석전(石田) 황욱(黃旭 1898~1993)입니다.
고창에서 태어난 황욱은 수전증이 생긴 이후 붓을 손바닥으로 쥐고 팔목으로 눌러쓰는 이른바 악필법(握筆法)을 창안하였습니다.
석전은 이러한 악필법으로 1991년 이 편액을 썼다고 합니다.

'금 산 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 30. 방등계단과 나란한 오층석탑 (0) | 2026.06.20 |
|---|---|
| 29. 두루한 계를 수하는 방등계단(方等戒壇) (1) | 2026.06.13 |
| 27. 알 수 없는 의문의 노주(露柱) (0) | 2026.06.03 |
| 26. 우람하면서 섬세한 석련대(石蓮臺) (0) | 2026.05.23 |
| 25. 모양 따라 육각다층탑이라 불리는 청석탑 (1) | 2026.05.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