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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문화

22. 산 속 호랑이가 신! 산신각(山神閣)

by 혜림의 혜림헌 2024. 5. 12.

산이 많은 한반도에서 산은 생명의 원천이요 경외의 대상입니다.

우리에게 산은 물을 흘려 농사를 짓게 하고, 나물과 연료와 목재와 신령스런 약초를 주어 생명을 부지하고, 병을 낫게 해 줍니다.

반면 이를 얻기 위해서는 험한 고개와 깊은 골짜기를 지나야 하니 언제라도 호환(虎患)을 당할 수 있는 두려움의 대상이었습니다.

 

산은 그저 고마운 존재이면서 무서운 호랑이가 더는 해를 끼치지 않기를 발원하니 산신령과 호랑이는 불가분의 관계가 됩니다.

누가 먼저라고 생각할 틈도 없이 산과 호랑이는 신이 되었습니다.

산신령은 새하얀 수염을 가진 노인으로, 사나운 호랑이는 길들여진 모습으로 마침내 사찰의 산신각으로 들어오게 됩니다.

산신 신앙은 불교와 관련이 없는 한반도 고유의 토착 신앙입니다.

따라서 산신각은 한국사찰에만 있는 전각으로 한국불교의 토착화와 전통신앙을 수용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중요한 사례입니다.

 

그럼에도 고려시대까지는 사찰에서 산신각을 볼 수 없었습니다.

산신이 처음 사찰에 들어 왔을 때에는 외호신 이었기 때문입니다.

조선시대 이후부터 차츰 하근기 중생들을 위한 신앙으로 자리 잡아 전각에 모셔지는 과정을 거칩니다.

 

산신각에는 노인과 호랑이가 묘사된 산신탱화가 봉안됩니다.

다만 경제력이 좋아진 요즘에는 목각 등으로 봉안되기도 합니다.

탱화 구성도 남성 노인과 호랑이의 구도에서 벗어나고 있습니다.

남성은 물론 여성도 등장하는데 남성신은 흰 수염과 벗겨진 머리에 손에는 백우선(白羽扇)이나 파초선, 불로초를 들고 있습니다.

배경은 삼신산(봉래산·방장산·영주산)이 주로 묘사됩니다.

댕기머리나 쪽진머리에 한복을 입은 여성신은 호랑이를 옆에 두거나 등에 걸터 앉는 모습인데 손에는 불로초를 들고 있기도 합니다.

일부 도교나 유교 색채가 강한 산신탱은 복건(福巾), 유건(儒巾), 정자관(程子冠) 등을 쓰고 차를 끓이는 동자나 동녀의 시중을 받는 모습으로 묘사되기도 합니다.

드물게 승려의 모습으로 불경이나 단주를 들고 있기도 합니다.

 

산신각(山神閣)이 일반적인 명칭이지만 산령각(山靈閣), 산왕각(山王閣), 산왕전(山王殿) 등의 편액을 볼 수 있으며, 공주 계룡산 신원사는 특별히 중악단(中嶽壇)이라는 편액을 달고 있습니다.

 

국토의 70%가 산으로 이루어진 우리나라는 산에 대한 경외심이 깊어 삼성각을 포함하면 거의 모든 사찰에 산신각이 있습니다.

중생들은 저 높으신 부처님보다 웬지 이웃 할아버지 같은 산신각을 찾아 건강하게 해달라고, 부자로 살게 해달라고, 자식들의 무탈과 공부 잘하기를 기원하며 빌고 또 빌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산신각으로는 조선시대 묘향산 상악단, 계룡산 중악단, 지리산 하악단 등 3악의 단이 있었으나 현재는 중악단만 전합니다.

조선말 고종의 정비인 민씨는 첫 아이를 병으로 잃은 후 다시 얻은 아이(순종)의 무탈함을 빌며 재물을 아끼지 않았다고 합니다.

금강산 봉우리마다 돈 천 냥, 쌀 한 섬, 베 한 필, 소머리 하나를 올리면서 망국을 재촉했지만 이는 불교와는 무관한 행사입니다.

더하여 계룡산 중악단을 짓는데도 상당액을 후원하여 사찰건축과는 또 다른 궁궐형식의 산신각을 볼 수 있으니 다만 모를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