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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문화

20. 죽은 자의 가르침! 지장전(地藏殿)

by 혜림의 혜림헌 2024. 4. 29.

()만 있기를 바라지만 생()과 멸()은 동행합니다.

태어나는 모든 생명은 죽습니다. 인간은 죽음을 두려워 합니다.

왜 두려운지 묻지만 답이 없습니다. 설명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죽음을 두려워하는 이유는 모르지만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하였으며, 한 번밖에 경험할 수 없기 때문에 두려워하는지도 모릅니다.

 

죽음에 대해 알지는 못하지만 종교지도자들이 믿기만 하면 죽은 다음 극락이나 천당에 간다고 하는데 묘하게 설득력이 있습니다.

죽어버렸는데 누가 극락에 가지?’라는 의심도 들지만 말입니다.

 

석가모니부처님은 진리를 말할 뿐 신 또는 자신이 신이라는 말도 안했지만 열반하신 뒤에 신처럼 추앙되더니 신이 되어 버렸습니다.

수행과 깨달음의 종교인 불교에서도 사후세계는 가까이 있습니다.

사후 명부(冥府)를 관장하는 지장보살을 모신 전각을 지장전 또는 명부전이라 하고, 심판관 시왕(十王)을 모시고 있어 시왕전입니다.

 

일반적인 지장전에는 총 29위의 상이 배치됩니다.

우선 가운데에 지장보살을 두고 좌우에 도명존자(道明尊者)와 무독귀왕(無毒鬼王)이 협시하고 있습니다.

좌우에는 시왕(十王)5위로 나눠 안치되고, 각 대왕마다는 1위씩 총 10위의 동자가 시봉하는 형태이지만 때로는 2위만 배치됩니다.

이 외 판사격인 판관(判官)2, 법원서기처럼 기록을 담당하는 녹사(錄事)2, 문 입구에는 경호원 격의 장군 2위가 있습니다.

질서가 정연하고 합리적이며, 권위가 있어 보입니다.

 

주존인 지장보살은 미륵부처님이 하생하기 전까지 말법시대 중생 교화를 부촉 받아 지옥 중생까지 구원된 연후에야 성불 하겠다.’는 대원을 세우고 천상에서 지옥에 이르는 육도(六道)중생을 제도하는 원력보살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지장전에서는 사자(死者)의 극락왕생을 비는 재()를 지냅니다.

인간이 죽으면 49일 동안은 7일 마다, 그 후에는 100일과 1주년소상(小祥)2주년인 대상(大祥)까지 총 10회에 걸쳐 생전에 지은 선악의 업을 시왕으로부터 심판받는다고 합니다.

 

()는 제()와는 엄연히 다릅니다.

()는 혼령에게 생전처럼 음식을 올리는 제사를 말합니다.

()는 혼령 즉 영가(靈駕)의 심신을 청결히 한 후 생전에 지은 업보를 참회케 하고, ()의 도리를 깨닫게 하는 의식입니다.

 

지장전(명부전)은 지장보살과 시왕을 함께 봉안하는 경우가 많고 후불탱화도 지장보살도(地藏菩薩圖)나 시왕탱화(十王幁畵)를 봉안하는데 이는 고려 후기 이후에 생겨난 변화입니다.

고려 후기까지만 해도 지장보살은 구원의 상징인 반면, 명부시왕은 사후의 심판자 역할을 하는 등 각각의 영역이 명확하였습니다.

허나, 생전의 업보를 심판받으면서 변호인이 곁에 있었으면 바람이 현실에서는 심판관인 명부시왕과 변호인격의 지장보살이 한자리에 봉안되는 형태로 변화되지 않았나 라는 생각도 해봅니다.

 

지장전에는 업경대(業鏡臺)라고 말하는 업경이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업경(業鏡)이 맞고 대()는 좌대를 이름할 뿐입니다.

저승에 도착하면 심판을 받게 되니 업경은 생전의 업보를 빠짐없이 보여주는 거울로써 법정에 제시되는 증거물 목록과 같습니다.

지장전에는 업경과 비슷한 업칭(業秤) 즉 저울도 있었다고 합니다.

남양주 흥국사 지장전 제9 도시대왕이 든 업칭이 거의 유일합니다.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게 되니 인간사의 정한 이치입니다.

지장전에 삼배를 올리고 지장보살과 심판자인 명부시왕을 우러르며 한 생각을 떠올리니 부귀영화를 향하던 업보만 쌓여 있습니다.

지장전은 지장보살님께 구원의 손길을 바라는 장소가 아닙니다.

업경에 비친 나의 업보들은 명부시왕의 엄격한 기준으로 심판 받게 된다는 사실을 직시하고 참되게 살겠다는 원력을 세우는 곳입니다.

매월 음력 18일이 지장재일이니 원력보살의 행을 실천해야 합니다.

 

대표적인 지장전으로는 고창 선운사, 상주 북장사, 청도 운문사, 김천 직지사, 칠곡 송림사, 영천 은해사 지장전이 있습니다.

 

(홍성 용봉사 지장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