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픕니다. 아프지 않은 사람이 없습니다. 몸도 마음도!
몸이 아파 고통에 시달릴 때는 누구에게 이 몸을 의탁해야 합니까?
가슴이 답답하고 마음이 울적할 때 누구에게 하소연해야 합니까?
우리의 병든 몸과 마음을 치유하는 문제는 영원한 숙제였습니다.
심신의 병고에 시달리는 중생들을 구제하는 약사여래불을 봉안한 전각을
약사전, 약왕전, 유리전, 유리광(보)전이라고 합니다.
약사전에는 손에 약합을 든 대의왕(大醫王) 약사불을 가운데 두고
좌우에 일광보살과 월광보살이 협시하는 형태로 봉안됩니다.
약사불은 과거 약왕보살(藥王菩薩)로 수행할 때 중생들의 고단한 실상을 보면서 이들의 아픔과 슬픔을 반드시 소멸시키겠다는 큰 원 즉 십이대원(十二大願)을 세워 정각을 이루었다고 합니다.
중생들이 약사여래의 이름을 부르면서 지켜주기를 발원한다면 모든 질병에서 벗어나 재앙과 액난이 소멸되는 가피(加被)를 입습니다.
유라시아 대륙 끄트머리에 자리한 한반도는 대륙과 바다 양쪽의 팽창세력에 끼어 끊임없는 위협과 침략에 시달릴 수밖에 없습니다.
조선 임진년과 병자년에는 일본과 청나라가 강토를 유린했습니다.
만백성의 어버이라던 임금(선조와 인조)은 도망치고 힘없는 백성은 그저 왜놈과 되놈에게 당하는 처자식 앞에서 울부짖지도 못합니다.
왜놈에겐 코와 귀를 베이고, 청나라로 끌려간 부녀자들은 환속금을 내고 돌아왔지만 환향녀(還鄕女)가 아닌 화냥년이 되어 시댁에서는 이혼당하고, 친정에서는 자결로 정절부인이 되기를 강요당합니다.
부패한 왕실과 수령들은 갖은 핑계로 수탈에 수탈을 더하였으며, 심지어 없는 살림에 돈을 모아 송덕비를 세워줘야 했습니다.
무시로 찾아드는 가뭄과 홍수는 굶주림을 일상으로 만들고, 수시로 창궐하는 괴질에는 그냥 죽어야만 벗어나는 더러운 세상입니다.
그나마 민중들이 믿고 의지할 곳은 약사여래부처님 뿐입니다.
행여 빌고 또 빌면 구해주시리니 사찰마다 약사전이 건립됩니다.
약사전 약사여래불은 선정인(禪定印)을 한 손 위에 약합(藥盒)을 들고 있지만 때로는 약병을 들고 있기도 합니다.
약사여래불 뒤에는 동방약사유리광회상도(東方藥師琉璃光會上圖)가 후불탱화로 봉안되는데, 약사부처님을 중심으로 좌우에 일광보살과 월광보살, 그리고 12신중이 그려져 있습니다.
대표적인 약사전은 어디에 있을까요?
크기로는 가장 크지 않고 가장 작기로 순천 송광사 약사전입니다.
정면과 측면 각 한 칸으로 두 사람이 들어서면 비좁을 정도입니다.
웅장하게 보이는 팔작지붕에 분합문까지 작지만 위엄이 넘칩니다.
남원 실상사 약사전도 작구요, 봉화 청량산 청량사 유리보전, 창녕 관룡사 약사전 등은 아기자기하고 친근합니다.
근래 들어 고성 보현암이나, 대구 동화사, 능인선원 등에서 엄청난 크기의 약사대불을 조성하면서 위압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합니다.
다만 세계 최대의 불상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송광사 약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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