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청평사를 나와 배후령을 넘는다.(2014105)
배후령!!
강원도 춘천시 신북읍과 강원도 화천군 간동면을 잇는 고개다. 국도 제46호선!!
험준한 고갯길로 사고가 잦아 마의 고갯길로 불리던 곳 이란다.
우리나라 건설업계 입장에서는 최고의 수익이 창출되는 지점이니
당연히 터널이 뚤려야 할 터 그래서 2012년 임시 개통되었다.
국내에서 가장 긴 터널 5,173m로 기록이 된다.
근데 기록을 보니 중앙고속도로 인제터널이 2017년 12월 완공되면 10,966m란다.
5년여의 짧은 신기록을 유지할 터.......
- 배후령 터널을 지나 영서에서 영동을 잇는 진부령에 섰다.
인제에서 고성을 연결하는 이 3고개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사연을 간직하였을까?
아니면 백두대간 종주를 염원하는 산 사나이들의 가슴을 설레게 한 그곳이다.
나름의 감회가 없을 수 없지만.......
- 건봉사 입구다.
건봉사에서 제일 먼저 객을 맞아주는 잘생긴 소나무다.
아름드리는 아니지만 쭉쭉뻗은 소나무 군락은 매우 인상적이다.
베이글녀처럼 사나이의 영혼을 뺏어가는 건봉사 소나무.......
걍 잘생겼다 한마디로 마무리하고자 한다.
- 금강산 건봉사 !
서기 520년 신라 아도화상이 창건했다 하니 그 역사만도 1500년이다.
758년 발징화상이 중건한 이후 정신, 양순 등과 함께 염불만일회를 열었으니....
만일(10,000일)동안 염불한다는 것이 상상이 되시는가?
만일이라면 1년을 365일, 1월을 30일로 할 때 27년 4개월 하고도 25일의 세월이다.
염불만일회에는 1,820명이 염불수행자를 위호하였는데 120명은 의복을, 1700명은 음식을 담당했단다.
787년 염불에 참여했던 31인이 극락왕생을 하였다 하니 그 이적이 놀랍다.
고려초 도선국사가 서봉사로 이름을 바꿔부르기도 하였지만 1358년 나옹선사가 다시 건봉사로 했다.
1455년 조선의 세조가 행차하여 왕실의 원당을 삼아 어실각을 짓게하고
사방십리의 땅을 건봉사에 하사하였으니 나날이 번성하게 된다.
- 그러나 1392년 일어난 임진왜란으로 호국도량의 본거지가 되었지만
더 뜻깊은 것은 사명스님께서 왜군이 약탈해간 통도사 진신치아사리를 되찾아 온 뒤
절을 중창하여 건봉사에 적멸보궁을 짓고 나눠 모시게 된 것이다.
이른바 달걀을 한 바구니에 담지 말라는 교훈을 실천했다 할까??
1802년 용허스님이 제2회 염불만일회를 열었고, 벽오 유총스님이 3회를 연다.
- 좋을 수만 없는 법!!
1878년 4월 3일 발발한 산불로 건물 3,183칸이 전소되었다 한다.
3,183칸 하면 느낌이 오는가?
99칸집을 부잣집의 상징으로 여겼으니 짐작하시라.......
다음 해 대웅전, 어실각, 명부전, 범종각, 향로전, 보안원, 낙서암, 백화암, 청련암을 중건한다.
농경지도 별루 없는 첩첩산중에서 이만한 불사를 이뤄낸 공덕은 어느정도일까??
1881년 만화 관준스님이 4회 염불만일회를 열고 1906년에는 신학문을 교육하는 봉명학교도 연다.
일제 강점기에는 31본산의 하나로 강원도 일대를 관리하는 대빵 사찰이 된다.
- 그러나 무상의 진리는 거짓이 없다.
6.25 한국전쟁으로 모든 전각이 불에 타 640칸 건물이 폐허로 변한다.
누가 태웠을까?? 범인은 유엔군! 정확히 말하면 미군이다.
1951년 1.4후퇴 때 자행된 미군의 무차별 폭격 말이다.
이후 민간인통제구역 안에 자리잡게 된 건봉사는 1980년대 후반까지 군법당으로 명맥을 이어오면서
부처님오신날 하루만 출입이 허용되다가 1989년에야 출입이 허용되고
1994년부터 본격적인 복원불사도 진행되었다 한다.
물론 아직도 민간인은 볼 수가 없으니.......
다만 1990년 이후 2000년 초반까지의 기록이 부실하여 아쉽다.
- 건봉사 불이문!
1920년에 건립되었단다.
건봉사는 일주문이 없는 대신 불이문이 일주문을 대신한다.
625전란에도 유일하게 살아(?)남은 불이문의 편액은 해강 김규진의 글씨다.
불이문은 방형의 주초석 위에 돌기둥을 세웠으며 돌기둥에는 금강저가 음각되어 있다.
불이라! 둘이 아니란다.
너와 내가, 선과 악이, 좋고 나쁨이, 중생과 부처가 둘이 아니란다.
무엇이든 둘로 나눠야 직성이 풀리는 중생의 입장에서 이해하기 어렵지만.......
무상과 무아 연기를 조금만 이해한다면.......
불이문 편액은 해강 김규진이 썼다.
- 그 옛날 건봉사 !!
대웅전, 사리탑, 낙서전 등 여러 건역으로 나위어 그 위용을 자랑한다.
하지만 현재는 대웅전과 적멸보궁만 복원이 되고 낙서전은 진행중이고 나머지는 걍 터다.
-건봉사와 인연 깊은..... 만해스님의 시비와 사명대사의 기념관이 있다. 하지만 기념관의 문은 굳게 닫혀있다. 해남 대흥사 등 여러곳에 사명대사 유물전시관이 있는데......... 남기신 유물은 얼마나 되길래.....
- 건봉사 능파교다. 보물 1336호다.
능파라!!!!!
파도 위를 걷는 것 같다는 뜻이니 아름다운 여인의 가볍고 아름다운 걸음걸이를 이르는 말이다.
깊은 산중 절집에서 여인의 걸음걸이를 논하진 않았을 터!!
고해의 바다를 건너 해탈의 세계로 나아가는 상징이 아닐까??
- 능파교 구경을 마치고 최북단 통일전망대를 찾았다.
건봉사에서 절집 일을 돌아보시는 덕명불 보살님이 동행했다.
멀리 보이는 금강산과 해금강 등 아름다운 우리 산하이지만 가볼 수 없기에 감회가 새롭다.
간만에 뵙는 보살님의 근황이 부처님이 품 안에서 평안해 보여 다행인 마음이다.
- 절집에 갔다고 절밥만 축낼 수는 없다.
그래서 추천받은 곳이 봉가네다.
나온 음식이 정갈하고, 재료는 신선하였으며, 재료 본연의 맛이 살아있다.
손수 주워온 도토리론 쑨 묵과 싸리버선나물, 시금치무침, 곤드래나물, 도라지무침 등등.......
어느 누구에게도 자신 있게 권하고 싶은 곳이다.
- 만족한 저녁공양을 마치고 절집에 도착했다.
오늘 저녁을 묵을 숙소다.
아담한 방에는 샤워실을 겸한 화장실, 옷장, 탁자, 횃대, 시계 각각 하나가 장식의 전부다.
눈길을 끄는 객에게 주는 주의사항이다.
1. 예불을 참석하시란다...... 얼마나 예불에 참석을 아니 했으면!!
2. 공양시간을 지키란다...... 공양주를 얼마나 귀찮게 했으면 !!
3. 청소를 하구, 술담배를 금한단다....... 절집에서의 곡차 한 잔이 주는 맛을 잊지 못하는 분이 .....
4. 큰소리를 내거나 심지어 싸움과 욕설도 있는 모양이다..... 그러니 하지 말랜다.
5. 인사도 없이 가는 분도 있나보다... 허기사 오는 사람 막지 않고 가는 사람 잡지 않는다지만.......
- 건봉사에 어둠이 드리운다.
뭐 늦은 시간이라는 것은 아니다.
오고가는 이 없이 희미하게 빛나는 석등의 불빛, 법당을 밝히는 등도 마찬가지다.
- 새벽 4시에 일어나 대웅전에서 예불을 올린다.
절집에서의 예불!! 조금 오랜만이다.
글구 아침 공양을 마친다. 공양실의 대들보와 조왕신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 공양을 마친 후 등공대에 오른다.
등공대에 대한 설명이다.
- 등공대 가는 길.......
등공대 해탈의 길이라 쓰여있다.
등공대 가는 길은 군의 작전지역이다.
그리하야 얼마 전까지만 해도 군부대의 허락을 받아야 출입이 가능했단다.
물론 지금도 아무나 출입할 수 없도록 자물쇠로 출입문을 걸어 잠그고 주변에는 철조망이 쳐저있다.
다만 쇠를 절에서 관리할 수 있도록 편의를 제공하고 있을 뿐.......
들어간 사람의 수와 돌아나온 사람의 수는 CCTV로 실시간 감시한단다.
그럴밖에 !! 얼마전 임모병장의 총기살인사건이 난 00사단의 최 전방 철책선이 가까이 있단다.
- 20여분 남짓 걸었을까?? 드뎌 등공대다.
방형의 지대석과 복련받침이 일체형으로 장식된 기단 위에 석종형으로 조성되었다.
정면에 배례석이 있고 탑신에는 명문이 있다.
三十一人騰空遺跡記念之塔(삼십일인등공유적기념지탑),
글구 00 四年 乙卯 七月日立이라....앞 년도는 지워지고 없다.
등공대 저 멀리 휴전선을 지키는 군부대 등이 보일 만치 등공대는 북녁과 가까이 있다.
나 역시 나무아미타불을 염하여 등공하리라 다짐하며 두 손을 모은다.
- 장군샘이다.
사명대사께서 승군을 훈련시킬 때 식수로 사용하였으며,
그 효험이 커 김일성이도 자주 마셨다는 야그가 전한다.
웬 김일성일까 하지만 6.25가 발발하기 전까지는 북한지역이었으니께.....
- 적멸보궁에 섰다.
전술한 것처럼 사명스님의 정성으로 건봉사에 모셔지게 된 부처님 치아 진신사리!
건봉사에서도 수난을 당한다.
80년대 학술연구단으로 변장한 도적들이 관리되지 않는 건봉사에 접근한다.
학술연구단처럼 행동하며 기회를 보던 이들이 적멸보궁 진신사리탑을 헐어 사리를 탈취한다.
자그만치 12과!!!!!]
근데 사리를 훔쳐간 도적들이 잠도 안오고,
밤마다, 꿈마다 부처님이 나타나 사리를 되돌려 놓으라고 야단을 친다.
생각생각 끝에 자수를 하고 사리를 돌려놓는다. 근데 12과중 8과만.......
건봉사에서 3과는 사리탑에 다시 봉안하고 5과는 신도들이 수시 친견할 수 있도록 한다.
- 법당에 전시용으로 모신 치아사리.......
- 낙서전 지역에서 한 컷!
- 건봉사 편액.... 초당이란 분이 쓰셨나 보다.
- 누하에서 본 대웅전
- 건봉사에는 석주 즉 돌기둥이 여럿있다. 우선 능파교 건너 좌우에 십바라밀 석주 2기가 서 있다.
- 능파교에서 바라본 건봉사 대웅전지역 전경!!
- 절집의 귀염둥이>>>>>
- 절집주변 이모저모!!!!!
- 누각 지붕에 앉은 새 한마리.....
- 정면 측면 각 1칸 산신각
- 앞으로 복원이 되어야 할 건봉사!
- 절집의 기와
- 헌식대
- 보살님과 차담 그리고 작별의 인사
- 부도전이다. 부도전은 부도밭이라고도 하는 것을 보았는데 이는 잘못이다. 부도가 설치된 곳을 밭이라고 해서야 쓰겠는가?? 부도전(浮屠殿) 즉 대궐전자를 써야 맞다. 건봉사 부도전은 과거의 영광을 말하는 듯 그 크기와 숫자가 대단하다.
- 산사의 밤.... 산사의 하룻밤도 마찬가지다. 사실은 불편하다. 세속에 물든 몸이 여러가지 청규를 지켜야 하니 불편한 것은 당연지사....... 새벽 4시에 일어나 참여하는 예불은 한편으로는 불편함이요, 한편으로는 나를 찾는 시간이다. 가다듬은 예불소리, 정근, 108배 등등 어느 하나 아무곳에서나 맛볼 수 없는 소중한 시간이다. 그 불편함을 견디었을 때 나의 몸과 마음이 정화되지 않을까?? 절집도 사람사는 세상이다. 사연이 없을 수 없고, 이치에 맞지 않는 부분이 없을 수 없다. 그럼에도 절집에서의 하룻밤이 그리운건 나만의 생각일까??
- 보살님 감사합니다.
혜림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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