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언제부터인가 설악산 봉정암이 불자들의 로망이 되었다..
평생 세 번은 다녀와야 한다느니.. 하면서 말이다.
도대체 봉정암에 무엇이 있기에?? 아니면 다른 어떤 이유로??
봉정암이 5대 적멸보궁중의 하나이긴 하지만
여러 보궁중의 하나임에도 왜 불자들의 로망이 되었단 말인가?
우선은 해발 1,224m 높은 곳에 자리한 지리적 여건이 그것이고.....
지리적 여건 말고도 신체적, 정신적, 기타의 여건상 다가가기 어려운 것도 그 이유일 것이다.
봉정암을 가기 위한 이유가 기도가피, 소원성취는 물론
심지어 몇번 다녀왔다는 상(?)을 내기 위해서 등등 많은 만큼
건강, 체력, 시간, 경제사정 등등 가지 못하는 핑게도 또한 많은 것이
봉정암을 불자들의 로망으로 만들어 가고 있는것 같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그냥 가면 될 일이다.
물론 무모한 용기가 후회를 낳기는 하지만 말이다.
오랜기간 절집을 부지런히 쫓아다니는 나를 향해 봉정암 가는 길을 묻는다.
물론 같이 가자는 거다.
그동안 5대 적멸보궁을 두루 순례하였지만 ......
수년 전 봉정암 불뇌사리탑을 그저 구경가는 사람처럼 다녀온 것이 못내 아쉬워
다시 한번 찾아가 깊은 상념의 시간을 갖고 싶던 차에 전주포교사단에서 봉정암을 가잔다.
그냥 가지 뭐.....
그간 봉정암을 로망으로 여기던 이에게 연락을 하고.....
미안한 것은 무릎사정으로 아직까지 로망으로만 간직해야할 그 사람이다.
불자들의 로망 봉정암은 어떤곳인가??
강원도 인제군 북면 용대리 설악산 소청봉(小靑峰)에 자리한 봉정암은
대한불교조계종 제3교구인 신흥사 말사 백담사(百潭寺)의 부속암자이다.
대표적 불교성지인 5대 적멸보궁(五大 寂滅寶宮 : 영축산 통도사, 오대산 상원사,
사자산 법흥사, 태백산 정암사)의 하나인 것은 이미 알고 있지만.......
봉정암은 우선 설악산 용아장성이 내려다보이는 1,224m지점에 위치하여
한 번 오르기가 수월하지 않다는 것은 말했고...
봉정암에 오르는 길은
- 용대리→백담사→영시암을 거쳐 수렴동 계곡→구곡담→깔딱고개를 오르는 길과
- 영시암에서 오세암을 거쳐 가는 두 가지 길이 애용된다.
물론 한계령이나 오색에서 출발하여 중청을 거치는 코스도 있고
신흥사에서 출발하여 오르는 코스 등이 다양하지만 말이다.
백담사에서 시작하여 수렴동 계곡을 거쳐 봉정암에 이르는 길은
건강한 사람도 장장 6시간을 걸어 올라야 하는 고난과 시험과 발원의 길이다.
특히 깔딱고개라 부르는 길은 누구나 손과 발을 동시에 사용하여
기다시피 올라야 하는 곳으로 불자들의 원성이 자자하지만 말이다.
깔딱고개가 아니어도 등산을 낙으로 삼는 이가 아니라면
8시간에서 10시간까지 걷는다는 자체가 쉬운일은 아니다.
봉정암은 서기 643년(선덕여왕 12)에 자장스님께서
당나라 유학중 부처님의 정골사리와 금란가사를 전해받으면서 시작된다.
이후 자장은 해동국을 돌아다니면 진신사리를 모실 곳을 찾아다니다가
뒤를 쫒던 아름다운 봉황이 설악산 봉우리에서 홀연히 바위 뒤로 자취를 감추니
바위의 형상이 과연 부처님의 형상이요 봉황의 이마라.
그곳에 5층 탑을 세워 사리를 봉안하니 그곳이 바로 봉정암이다.
그 뒤 많은 변화가 있었지만
6. 25 이후 간신히 명맥만 유지하다가 1985년부터 대대적인 중창불사가 이어지고
부처님오신날 특집으로 소개되면서 불자들의 로망이 되어버린 것 같다.
휴일(6월 12일)을 길일로 하여 버스가 전주를 출발한다.
39명이 각자 자기소개를 하는데 사연이 절절하다.
말씀도 잘하시고, 경력들이 화려하다....
샌님부터, 공먼, 갱찰, 순수 주부까지
혼자인가 하면 부부가, 친구가, 모자가, 자매가 동행하였고
꼬옥 한번 가보고 싶었다는 것 말고는 다 다르지만.......
5시간을 넘겨서 달려 도착한 곳이 내설악 광장!! 한계령하고 미시령이 갈리는 곳이다.
강원도 특산 황태구이로 점심을 때우고
만해마을을 지나 용대리 주차장에 몸을 부립니다.
이 곳에서 1인당 거금 2천원을 주고 배담사행 마을 버스에 다시 몸을 싣습니다.
백담사까지는 7㎞..... 백담사 앞!!!
백담사를 향하여 합장저두를 한 후 오세암을 향하여 출발합니다.
거리로는 약 5㎞ 정도로 1시간 하고도 십여분을 가면 영시암에 도착합니다.
(영시암 전경)
영시암은 조선 숙종때 세자 책봉 문제로 숙청된 영의정 김수향의 아들 김창흡이
속세의 인연을 끊는 의미로 활을 떠난 화살을 빗대 영시암(永矢:화살시)이라 했답니다.
오세암과 봉정암 가는 길이 갈리는 곳으로 쉼터와 같은 곳입니다.
근래에 중창불사가 한창이라 불사 권선의 목소리가 계곡을 울립니다.
문수보살이 상주한다기에
지혜를 구하는 마음으로 누군가를 위하는 마음으로
기와 한장을 올리고 길을 재촉합니다.
간간이 뿌리는 빗줄기가 시원하긴 합니다만 시원한 만큼 불편함이 있습니다.
오세암 가는 길에 만난 아름드리 전나무입니다.
영시암에서 오세암에 이르는 길은 거리는 3㎞ 남짓 하지만 경사가 이어지고
오르내림이 반복되어 산행이 익숙치 않은 이 에게는 쉽지않은 길입니다. 몇몇 보살님은 풀려버린 다리를 원망하며 자꾸 시간을 지체합니다만, 일행의 마지막을 담당하여 어르고 달래 2시간여 만에 오세암에 도착합니다.
(오세암 천진관음보전입니다) 뒤로 관음봉이라는 거대한 바위가 있습니다만 구름에 가립니다.
아마도 천진관음보전의 보배 "보"자가 익숙치 않은가 합니다. 전각의 이름을 묻는 이가 여럿인 이유입니다.
오세암은 자장율사가 관음암으로 창건하였으나 조선인조 1643년 오세동자의 이야기가 전하면서 오세암으로 그 이름을 바꾸게 됩니다. 오세동자의 이야기야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되어 많이 방영되었으니 잘 아시겠지만.... 네살 동자승이 아무도 없는 설악산 깊은 산속 암자에서 오직 관세음보살을 부름으로써 한 겨울을 무사히 보냄은 물론 깨달음을 얻었다는 것이 줄거리입니다.
천진관음보전에서 저녁예불을 올립니다. - 일심으로 부르는 관음보살 명호속에 신심이 솟아납니다. - 일심으로 부르는 관음보살 명호속에 업장이 녹아듭니다. - 일심으로 부르는 관음보살 명호속에 기도를 성취합니다. 기도를 마치고 총무스님의 법문이 이어집니다. 영험하신 오세암 관세음보살님을 칭송하고 깊은 산중 절집 살림을 꾸리는 어려움을 말씀하십니다. 말을 더듬는 듯 순진한 말투가 산행으로 지친 일행을 웃음으로 인도합니다.
오세암 관세음보살님은 백의관음보살입니다.
하얀 옷을 입으신 보살님을 바라보노라면
- 만 근심이 사라집니다.
- 희망이 솟아납니다.
- 원하는 바 모든 기도를 성취해 줄것입니다.
오른손에는 보병(정병)을 들고 왼손에는 버들가지를 들었습니다.
흰옷을 입으니 백의관음이요, 버들가지를 들었으니 양류관음입니다.
후불탱화인 아미타회상도가 관음보살님을 장엄합니다.
(소위 뻥 하고 터지신 순례단의 얼굴이 평화롭습니다)
총무스님의 법문이 산행에 지친 순례객의 피로를 덜어냅니다.
오세암에는 오세동자를 기리는 동자전이 있습니다.
맞배지붕에 정면3칸의 간결한 전각입니다.
(동자전) 전경입니다.
안에는 물론 동자상이 모셔져있구요..
동자상이 천진상이지만 협시동자는 더한 천진동자입니다.
천원짜리 지폐를 받아들고 즐거워하고 상념에 잠긴 동자(?)의 모습입니다.
요사채 아래에 시무외전이 있습니다.
시무외(施無畏)라 함은 보시중에서도 두려움을 없애주는 보시입니다만
전각 안에는 천수천안관세음보살님과 원불이 모셔져 있습니다.
(시무외전)
- 내리는 비는 많지 않지만 그칠 줄을 모릅니다.
멀리 내설악의 암봉들이 구름에 가려있습니다.
산행하기에는 더 없이 좋은 날씨입니다.
- 오세암의 공양시간입니다.
공양시간은 아침은 6시이구요, 점심은 12시, 저녁은 또 6시입니다.
길게 늘어선 줄입니다만 능숙한 배식으로 줄은 금새 줄어듭니다.
- 공양을 배식하는 일로 스님과 공양주 보살이 복을 짓습니다.
배식이 한창입니다만 보살님 한 분이 공양을 알리는 타종을 합니다.
- 오세암을 찾는 대중들은 어떤 공양을 할까 궁금하셨죠??
미역국에 밥을 말아 오이무침 몇 조각을 엊은 것이 전부입니다.
보살님들 !!! 삼시세끼 이정도로 공양을 준비하면 참 쉽겠지요??
함 실천해 보십시요..
맛이 어떠냐구요??
먹어보지 않았음 말을 마십시요...
아주 맛이 있습니다. 왜냐구요??? 시장이 반찬이니까..
아침공양을 마치면 봉정암을 오르거나 하산하는 이들을 위해 주먹밥을 준비해 줍니다.
주먹밥은 소금으로 간 한 밥에 참기름을 비벼서 김으로 마감한 것입니다.
산행중에 허기를 달래기에는 일품입니다.
동자전 앞에서 증거사진을 촬영합니다.
일행이 다 모이기는 어렵습니다.
일행중에 부부가 참여한 은산과 금해입니다.
옆에 계신분은 침 등 한의학을 독학하신 분으로 이번 길에 신세진 분이 많습니다.
근데 정식 면허는 없답니다.
사실 면허라는 것이 자기들만의 독점적 지위를 누리기 위해 만든
아주 좋지않은 제도이지만 면허제도가 없는 것보다는 있는 것이 낫다는군요.
면허라는 제도를 멀리할 수 없는 것이 오늘날 사회의 구조입니다.
이튿날(6.13일) 아침예불과 공양을 마친 후
오세암 대중이 마련해 준 주먹밥을 받아들고
안녕히 다녀가시라는, 꼭 기도성취하시라는 축원을 뒤로하고 봉정암 가는 대 장정을 나섭니다.
이제부터 오세폭포와 가야동계곡을 건너 봉정암에 이르는 4㎞ 남짓 3시간여의 길입니다.
특히 가야동계곡에서 불뇌사리탑에 오르는 길은 깔딱고개 못지않은 험로입니다.
모두가 단단한 다짐을 합니다만......
산행을 잘 못하는 도반은 자기보다 더 못하는 도반을 채근하여 끝까지 가자합니다.
물론 불뇌사리탑을 다 같이 친견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지만
한편으로는 힘든산행에 위안을 삼기 위함입니다.
그것이 인간의 마음입니다.
중관이나 유식 등 마음을 정의한 론서들이 많이 있지만 알 수 없는 것이 마음입니다.
마음이 넓어지면 우주를 안을 수 있지만 마음이 좁아지면 바늘하나 꽂을 자리가 없습니다.
운전을 해야하는 기사님과 국장님 그리고 보살님 한분이 하산을 결정합니다.
나머지 36명이 부처님 진신사리가 모셔진 불뇌사리탑을 향하여 고난의 여정을 시작합니다.
오직 부처님의 영험함을 믿으며.......
자장스님께서는 하필이면 저 높은 곳에 사리를 모셨을까??
스님을 원망하면서 말입니다......
(2편에 계속)
혜림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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