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창기 조선왕조의 실록은 춘추관과 청주의 사고에 보관됩니다.
세종대인 1439년 사헌부 건의로 경기전 안에 사고가 설치됩니다.
이후 1445년 12월 춘추관, 충주, 전주, 성주에 사고각을 건립하고 왕조실록을 분산 보관하는 4대 사고 제도를 확립하게 됩니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 삼천리강산이 불길에 휩싸이게 될 때 전주사고를 제외한 3개 사고와 왕조실록도 화를 피하지 못합니다.
전주사고에 보관된 실록은 태인 선비 안의와 손홍록이 지켜냅니다.
이들은 왜적이 금산에 침입했다는 소문을 듣고 전주로 달려옵니다.
경기전 참봉 오희길 등과 상의한 후 태조부터 명종까지 13대 왕의 실록 804권과 태조의 영정을 정읍내장산 용굴암으로 옮겨 다음 해 7월 조정에 인계할 때까지 14개월간 실록과 어진을 지켜냅니다.
조정에서는 내장산에 사관을 파견하여 실록과 어진을 해주·강화도·묘향산으로 옮겼다가 1603년 7월에야 실록 재출간에 돌입합니다.
재 출간된 실록은 전주본과 교정본에 더해 3부를 추가한 총 5부로 춘추관과 마니산·태백산·묘향산·오대산에 사고를 지어 봉안합니다.
이중 원본인 전주사고의 실록은 마니산에 보관됩니다.
5대 사고 중 묘향산 사고는 북방민족의 침공으로 위험에 처합니다.
이에 묘향산본을 무주 적상산성으로 옮기기로 하고 1614년 실록전(實錄殿)을 건립한 후 4년 뒤인 1618년 9월부터 실록을 봉안하기 시작하여 인조 11년(1633) 묘향산본 실록 이전을 마무리합니다.
1910년 이후 일제는 전국의 실록을 구 황실문고에 보관하는 한편, 오대산 사고는 멋대로 탈취해 동경대로 가져가 버립니다.
결국 오대산본은 관동대지진 때 타버리니 일부만 되돌려받습니다.
대한민국 출범과 6. 25동란을 거치면서 오지에 남겨진 사고건물은 관리소홀로 사라졌다가 근래 들어 형태만 복원되고 있습니다.
실록은 서울대 규장각에서 보관되고 번역 등의 연구가 진행됩니다.
6. 25 이후 행방이 묘연했던 적상산본은 북한에서 ‘조선왕조실록을 번역했다.’는 1991년 발표로 뒤늦게 행방을 알게 되었습니다.
2층으로 된 전주사고는 내부에 사고 자료가 전시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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