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가 혼란하고 나라가 어지러우니 새로운 세상을 염원합니다.
의도하지 않아도 모악산과 미륵불은 신흥종교의 발상지가 됩니다.
모악산의 미륵은 새로운 사상을 품어주고 이론적 토대가 됩니다.
금산사 아랫마을에 오리알터라 하는 금평저수지가 있습니다.
주변에는 증산(甑山) 강일순(1871~1909)의 흔적이 즐비합니다.
증산법종교본부에는 증산 부부의 육신이 영면한 영대(靈臺)와 증산미륵불을 봉안한 삼청전 등 1950년대 전각이 다소 처연합니다.
저수지 건너편에는 증산이 중생들의 병을 고치고 도를 펼친 구릿골(銅谷) 약방과 증산의 영정을 봉안한 청도대향원 등이 있습니다.
근래에 대순진리회 관련 대형 콘크리트 한옥형 건물도 화려합니다.
증산은 동학혁명이 좌절된 후 유·불·선, 음양, 풍수, 복서(卜書), 의술을 연구하고, 신명(神明)을 부리는 도술을 공부합니다.
1897년부터 3년 유람에서 태을주(太乙呪)·정역(正易)을 얻습니다.
1901년에는 모악산 대원사에서 수행에 전념해, 7월 천지의 원리와 탐(貪), 음(淫), 진(嗔), 치(癡)를 극복하는 도통을 했다고 합니다.
동곡동에서는 조화로운 세상을 위한 천지공사로 병을 치료합니다.
1908년 초 일본 경찰에 체포돼 38일간 고문을 받고 석방됩니다.
이후 만경현에서 소주로 심신을 달래다 1909년 8월 39세로 세연을 접습니다.
증산은 7년 남짓 활동했지만 신흥종교에 큰 영향을 끼칩니다.
증산 사후 11인의 제자가 각기 후계자를 자처했지만 사라집니다.
하지만 셋째 부인 고판례는 태을교, 제자 차경석은 보천교, 외동딸 강순임은 소송 끝에 증산의 시신을 거둬 증산법종교를 설립합니다.
해방 이후 증산교, 대순진리회까지 증산의 아류임을 기억합니다.
그중에서도 보천교는 백두산에서 벌채한 소나무를 압록강과 서해로 운반하여 정읍 입암에 십일전을 짓고 수백만의 신도를 거느립니다.
다만 일체 강점기인 1936년 교주 차경석이 사망한 후 쇠퇴합니다.
일제 경찰에 의한 독살이라는 주장이 강하지만 증거는 없습니다.
보천교 십일전은 해체되어 현 종로 조계사 대웅전으로 거듭납니다.
참고로 보천교주 차경석의 아버지 차치구는 동학농민전쟁의 총대장 전봉준 휘하로 공주 우금치 전투에서 전사했다고 알려졌습니다.
보천교주 차경석의 아들이 빨치산 토벌대장 차일혁 총경입니다.
더하여 차경석의 손자가 퇴마사 차길진 법사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금산사에서 모악산 정상을 넘으면 천일암과 마고암이 있습니다.
김양순보살이 1987년 열반할 때까지 지킨 동곡사는 일지 이승헌이 창시한 단학선원(이후 단월드)에서 인수하여 천일암이 됩니다.
복호사로 창건된 마고암은 문수암이 된 후 천일암에서 인수합니다.
천일암을 운영하는 단월드는 명상, 기체조, 뇌 교육을 주 수련으로 하는데 운영과 조직은 지극히 상업적인 주식회사 형태라고 합니다.
천일암에는 단군상이 서 있고, 바위에는 천부경이 새겨 있습니다.
상학주차장 옆 상가 상당수가 단월드 관련이며, 미국 애리조나에도 마고가든을 설립하여 운영중인 걸로 알려져 있습니다.
매년 여름이면 천일암 가는 계곡을 중심으로 명상대회가 열립니다.
모악의 품이 참으로 넓고 깊습니다.
(사진은 증산법종교본부 영대가 보입니다)

'금 산 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 5. 날마다 쉬는 날이었던 성보박물관 (0) | 2025.12.24 |
|---|---|
| 4. 모악성지·용화종찰 표지와 일주문 (1) | 2025.12.17 |
| 2. 소치 허련의 금산사도(金山寺圖) (0) | 2025.12.04 |
| 1. 모악의 품에 안긴 금산사를 갑니다. (0) | 2025.11.28 |
| 윤회! 돌고 도는가? (0) | 2024.04.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