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산사 사하촌을 지나 모악성지(母岳聖地) 표지석이 있습니다.
개화문을 지나면 오른쪽에 용화종찰 미륵성지(龍華宗刹 彌勒聖地) 표지석이 있어
금산사가 마륵불이 하생한 미륵성지라 알려줍니다,
한반도는 선사시대 거석문화 유물인 고인돌군이 다수 있습니다.
조선시대 군·현, 부·목·도호부가 있던 고을에 공덕비가 세워집니다.
현대 들어 건물을 짓고, 다리를 놓고, 도로를 내고, 공원을 만들고, 체육관과 운동장을 짓고 나면 어김없이 거대한 표지석을 세웁니다.
공원이나 시내 공터 등에는 시비와 문학비, 기념비가 즐비합니다.
산야를 덮은 묘지에도 어김없이 출세한 자손들이 비석을 세웁니다.
등산객이 찾는 유명한 산 꼭대기 마다에는 정상석이 올려집니다.
우리 산하의 풍부한 화강석도 기념비를 세우는 데 일조합니다.
선사시대 수백 명을 동원하여 세운 고인돌은 이제는 문화재입니다.
지향점을 새긴 국정원 표지석은 정권에 따라 이름표를 바꾼답니다.
묘지를 빛내던 비석들은 후손들의 부침에 따라 방치되기도 합니다.
글자로 된 비석은 과장과 조작으로 매국노가 애국자로 변신합니다.
한문으로 새긴 비문은 읽기도 해석하기도 어려워 그냥 거석입니다.
오른쪽에 야영장을 끼고 조금 더 가면 웅장한 일주문입니다.
한국은 일주문과 홍살문, 중국은 패방, 일본은 도리이가 있습니다.
일주문은 두 기둥을 일직선으로 세우고 지붕을 얹은 건물입니다.
일반적인 한옥은 네 기둥(四柱)를 세우고 지붕을 얹는 형태입니다.
일주문은 사찰은 찾는 이에겐 오직 ‘한 마음(一心)’을 의미합니다.
세속적으로는 ‘이곳이 모악산 금산사’라 친절히 안내하고 있습니다.
다포식 맞배지붕의 일주문은 ‘1975년 건립 되었다.’고 안내 하지만 2007년경 다시 지어 2009년 단청과 편액을 정비했다고 봅니다.
편액은 서예가 일중(一中) 김충현(1921~2006)의 글씨입니다.
일중은 사찰의 편액을 다수 남겼으며 한글서예에도 앞장섰습니다.
일주문 편액은 당초 흰색이었는데 현재는 금색으로 바뀌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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