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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 산 사

2. 소치 허련의 금산사도(金山寺圖)

by 혜림의 혜림헌 2025. 12. 4.

남종화의 대가인 소치 허련(1808~1893)의 금산사 인연입니다.

소치는 진도에서 태어나 대흥사 초의 스님의 소개로 추사의 제자가 되었으며, 스승의 유배지 제주를 세 번이나 찾는 정성을 보입니다.

목숨 건 바닷길을 건너던 의리남 소치의 화풍은 아들인 미산 허형, 손자 남농 허건, 인척인 의제 허백련으로 이어집니다.

소치는 1860년대 즈음에 금산사를 방문하고 금산사도를 남깁니다.

참고로 금산사도는 전북대학교 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습니다.

 

소치가 어떠한 인연으로 금산사도를 그렸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소치는 1865년 겨울부터 1867년 5월까지 임피면(옛 임피현)에서 머물렀다는 얘기가 전하는데 금산사도와 관련 기록은 없습니다.

소치가 금산사 스님과 인연이 깊었다던가, 한양과 남도를 오고가는 길목에 있는 금산사에서 유숙했을 수 있다는 추측은 부질없습니다.

그럼에도 1800년대 금산사를 그린 진경산수화는 귀한 자료입니다.

 

금산사도와 현 금산사를 비교해 봅니다.

금산사도에는 미륵전, 방등계단, 대적광전, 대장전, 석등, 보제루, 서래선원, 송대, 요사까지 자세하게 그려져 있습니다.

한마디로 지금의 금산사에 비해서도 손색없는 규모를 자랑합니다.

다만 대장전과 석등은 위치가 변경되었고, 홍예교도 보입니다.

금산사도 아랫부분에는 현 개화문인 옛 홍예문과 문루가 보입니다.

홍예문은 파괴된 채 홍예 구조물만 남아 석성문이라고 불렀습니다.

2008년도 금산사의 사적 496호 지정을 계기로 소치의 금산사도를 참고해 홍예문과 문루를 복원하고 개화문(開化門) 편액을 겁니다.

허나 복원된 개화문루는 다소 뜬금없고 주변과 조화도 불편합니다.

 

소치의 금산사도가 있어 그 옛날의 금산사가 보입니다.

운림산방에서야 느껴지는 소치의 숨결이 금산사를 기억합니다.

기록은 소중합니다.

(소치의 금산사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