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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만사

선진강 맑은물(다목적댐 이야기)

by 혜림의 혜림헌 2015. 9. 22.

 

- 전주에서 머지 않은 곳에 커다란 호소가 있습니다.

 섬진강 댐으로 생겨난 운암호를 말하지요.

 진안군 팔공산 자락 옥녀봉 아래 데미샘에서 발원한 자그마한 물줄기가

 임실 사선대를 지나 신평면, 운암면으로 다시 곡성, 구례, 광양까지 흘러흘러 섬진강이라 불립니다.

 그 길이는 220여 km!!!

 근데 거침없이 흘러야 할 물줄기가 임실군 강진면 옥정리에서 가로막혀 커다란 호소가 되니

 운암저수지, 섬진호, 옥정호 등등 부르는 이름도 많은 바로 그곳입니다.........   

 일명 옥정댐(호)이라고도 불리는 섬진강 댐은 

 섬진강 상류인 임실군 강진면 용수리와 정읍시 산내면 종성리 사이를 가로지르고 있지요.

 1965년 12월 완공된 섬진강 댐은 정읍은 물론 멀리 부안 계화도 청호저수지까지 달리면서

 드넓은 호남평야에 물을 공급하고 있기도 하구요.

 

(가뭄으로 바닥이 드러난 현재의 섬진강 댐) - 1965년 완공되었다.

 

- 근데 현재의 섬진강댐 이전에 운암제(댐)가 있었다는 사실을 기억하는지요.

 그리고 운암(종산)발전소까지 말입니다.

 

- 먼저 구댐 운암댐 이야기부터 하고자 합니다.

 1920년대 일제는 이른바 산미증식계획을 추진합니다. 

 한마디로 식량증산계획인데 주 내용은 가뭄 극복을 위한 저수지 축조사업이라 보시면 되겠군요.

 이에 앞장서던 동진수리조합은 남해로 흘러가는 섬진강 물을 가둬 정읍, 김제, 부안 등 호남평야에

 농업용수를 공급한다는 원대한(?) 계획을 수립합니다. 

 그리고 임실군 강진면 옥정리와 정읍시 산내면 황토리를 가로막는 운암호를 건설합니다.

 기념비에 의하면 단기 4258년(서기1925년)11월 공사에 착공하여

 4262년(서기 1929년) 11월 완공을 보게되는데 공사비는 2백5만원이라고 표기되어 있습니다.

 

- 그 운암제는 신댐 건설로 물속에 잠기데 되는데

 극심한 가뭄으로 다소 흉물스러운 옛모습을 드러냈습니다.

 구댐과 기념비의 모습을 감상하시겠습니다.

 

 

- 이제는 운암발전소 이야기입니다. 

 더하여 운암면에서 정읍 산외면 종산리 팽나무정까지 터널 759m를  뚫어

 섬진강물을 동진강 상류로 방류시켰는데요...물론 이 물은 호남평야의 젖줄이 됩니다.

 다만 농업용수로만 사용하기에는 아까웠겠지요.

 그래서 1931년 정읍시 산외면 종산리 해발 100m 성옥산 정상으로 물길을 돌리고

 

 75m의 낙차공을 둔 운암발전소를 건설하게 됩니다.

 이름하여 남한 최초의 유역변경식 수력발전소!!

 즉 낙차가 있는 곳으로 물길을 돌려 발전을 한다는 뜻??

 

- 운암발전소 전경

 

 

- 근데 무상의 진리는 여기에서도 변함없이 발현됩니다.

 1931년 10월 준공되었고 오랜세월 전기를 공급하던 발전소는 시설이 노후화되니

 1985년 2월 1일 그 기능을 섬진강(칠보)발전소로 넘겨주고 폐쇄됩니다.

 운암발전소! 전기공급 54년인데 이곳 건물은 올해로 84년을 견뎌왔군요. 

 그러나 정읍시 아니 전라북도가 간직해야 할 근대문화유산 운암발전소는

 어느 종교단체에 매각되어 수양관으로 사용되면서 원형을 완전히 상실하였습니다.

 남한 최초의 유역 변경식 수력발전소라는 역사적 의미를 살려

 우리나라 수력발전의 역사를 한눈에 알 수 있는 테마 박물관을 만들었으면 하는 상상을 해봅니다만....

 

- 이미 떠나버린 기차를 아쉬워하는 것은 부질없는 일이지만

 아래는 현재의 운암발전소 전경과 초당 15톤의 물을 흘러내려 수차를 돌리던 낙차공!!

 그리고 수차발전기를  전시한 사진입니다

 처음 한전중앙연수원(서울 노원구 공릉동)  창고에 보관하다 현재는 강원도 춘천댐 입구에 있다는 군요.

 집을 떠나 머나먼 강원도 춘천에 외롭게  전시되어 있는 남한 최초 수력발전설비

 고향집 원래 자리로 돌아와 멋지게 전시될 날을 기대해 봅니다

 근처 가시는 분은 한번 보세요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 이제는 섬진강댐과 섬진강(칠보)발전소 야그입니다.

 운암발전소로는 다소 양이 차지 않았던가요?

 

 1940년 기존의 댐하류 2㎞ 지점에 새로운 섬진강 댐 건설공사를 시작합니다.

 

- 1944년 2차 세계대전으로 중단되었지만 1945년 4월 온전하지않은 채로 댐을 건설하고 

 정읍시 산내면 장금리에서 칠보면 시산리까지 길이 6.2km의 터널을 뚫고 그 아래에 발전소를 세웁니다

 칠보발전소(시설용량 1만 4,400kW×1기)가 발전을 시작한 겁니다.

 이것이 섬진강수력발전소 제1호기로, 당시 전국 발전시설용량의 0.8% 정도를 차지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발전은 부수적인 것으로 상시발전(常時發電)이 불가능하고 해방 후에는 가동조차 어려워집니다.

 더 큰 댐이 필요하게 된거지요.

 

- 1948년 정부 지원으로 댐 공사를 시작하지만 6·25전쟁으로 발전소 설비까지 80% 이상 파괴되고 맙니다.

 1950년 12월부터 설비와 기기를 정비하여 1951년 제1호기를 완전복구했고,

 1961년부터 칠보수력발전소를 섬진강수력발전소라고 개명하게 됩니다.

 

- 댐은 1961년 4.19로 집권한 민주당 정권에서 시작하여 1965년에 국토건설사업의 일환으로

 중력식 콘크리트 댐을 건설하여 12월 준공되니 오늘의 섬진강다목적 댐이 바로 그것입니다.

 

- 댐의 높이는 64m, 길이는 344.2m이며, 수문 24개가 설치되어 있습니다.

 총저수용량은 4억6600만톤이며 만수위 때의 수면면적은 26.51㎢이며 유역면적은 763㎢에 달합니다.

 

(섬진강 댐 준공식 전경)

 

(현재 섬진강 댐 전경)

 

- 밝음이 있으면 어둠이 있습니다.

 이 댐 건설로 연간 1억 8,100만 kWh의 전력생산, 4억 600만t의 관개용수 공급,

 김제 광활, 계화도까지 301.70㎢의 관개면적 확대, 홍수조절(2,288㎤/s → 3,268㎤/s)능력확대 등등

 그 뿐만이 아니라 댐과 저수지가 상수원, 관광지, 낚시터, 양어장으로 다양하게 이용되었습니다.

 이상은 좋은면이구요.

 댐 건설로 전라북도 정읍시·임실군의 5개면 28개리 92.95㎢가 수몰되었으며,

 그곳에 살던 사람은 저를 포함하여 계화도, 전주, 기타 등지로 뿔뿔이 흩어지는 실향민이 됩니다.

 

다시 섬진강(칠보)발전소입니다.

 갈담저수지의 물은 장금리 취수구에서 약 6㎞의 수로를 통해 정읍시 칠보면 시산리로 향합니다.

 아래의 취수구를 통해서 말입니다.(가뭄으로 발전중단)

 

 

- 일제시대부터 운영되던 운암발전소는 1985년 3월에 폐쇄되었구요.

 1940년 9월에 기공된 칠보발전소는 1945년 4월에 준공되어 시설용량 14,400kw의 전기를 생산하며

 증설에 증설을 거듭하여 현재는 34,800kw의 전기를 생산하고 있습니다.

 즉 섬진강수력발전소로 유역변경하여 151.7m의 고낙차를 이용하고

 1-2호기(각 1만 4,400kW)에 이어 1983. 9월-1985. 3월까지 3호기(6천kW×1기)가 완공된 결과지요.

 

 

- 순창 팔덕에 약수를 뜨러 갔드랬습니다.

 외지에서 오신 동행이 있었구요.

 우연한 기회이지만 섬진강 일주 드라이브를 하다 긴 가뭄의 결과로 섬진강 구댐(운암제)를 봤구요.

 귀한 사진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여기 기록한 사진은 일부 출처를 알 수 없는 인터넷에서 구하기도 했지만 현재의 모습은 제겁니다.

 불과 예닐곱에 떠나온 고향의 이야기를 담을 수 있어 행복했습니다.

 고향!!! 걍 고향이지요.... 생각나고 생각하면 아련한 그곳 말입니다.

 

        혜림 합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