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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산회상

경주 남산이야기

by 혜림의 혜림헌 2011. 4. 11.

 

지금으로부터 2천년도 더 오랜 BC 57년 지금의 경주(서라벌)에

박씨성을 가진 혁거세가 지배자로 등장하게 됩니다.

이후 거서간, 차차웅, 이사금, 마립간으로 불리우는 박씨, 석씨, 김씨 성을 가진 지배자가

나라의 모습을 갖춰가면서 450여년이 지난 22대 지증왕대에 이르러 

드디어 "왕"이라는 호칭을 쓰는 나라다운 나라가 됩니다.

이후 935년 신라의 마지막 왕인 57대 경순왕이 고려의 왕건에게 항복할 때까지

그야말로 신라천년의 영화가 면면이 이어져옵니다.

(물론 예나 지금이나 영화는 언제나 가진 자인 그들만의 영화이지만.......)

 

특히 23대 법흥왕시절인 서기 527년 이차돈이 순교하고 이듬해인 528년 불교가 공인되자

신라는 사상적 안정을 이루면서 끝내는 백제와 고구려를 차례로 멸망시키고

그야말로 한반도의 패자가 됩니다.  이른바 삼국의 통일입니다.

 

법흥왕에 의해 불교가 공인되고, 

불교를 사상적 기반으로 하면서 왕실의 존엄을 이어가니  

경주(서라벌)의 남쪽에 자리잡은 남산은 동쪽의 불국사와 더불어 불국토의 중심이 됩니다.

 

그러나 그간 다보탑과 석가탑 등의 이름을 등에 업은 불국사와 석굴암에 밀려

우리에게 다소 멀리 있었던 것이 바로 남산입니다.

하지만 낭중지추(囊中之錐)라 했으니 남산의 보물이 어디로 가겠습니까??

불교를 숭앙하는 많은 이들의 노력에 의해 남산의 진면목이 하나 둘씩 세상에 알려지게 되니

이제는 남산 자체가 해동 대한민국의 불국토요, 신라의 절이요, 우리의 절이 되고 있습니다.

 

이에 전주 참좋은우리절의 33차 가람순례가 남산을 향합니다.

사실 남산이라는 말은 중심도시의 남쪽에 있다는 의미가 크지만

우리가 쉽게 접하는 마을의 앞산 정도로 이해하면 됩니다.

그만큼 우리와 가깝고 친근하다는 의미이겠지요.

 

익산~장수, 대전~통영, 팔팔, 경부 등 고속도로만 4개를 경유하는 장정입니다.

근데 3시간여를 달려 쉬게된 평사휴게소에서 특이한 광경을 목격하게 됩니다. 

비슷한 조끼를 입으신 분들이 한줄로 길게 늘어서 있습니다.

자세히 보니 서울 도선사 선묵혜자스님의 108사찰순례단이

휴게소에 멈춰서서 화장실 순서를 기다리는 것입니다.

가시는 길을 물으니 울주 가지산 석남사랍니다.

대단하시지요??? 아마도 버스 30여대가 한꺼번에 움직이다 보니 만들어낸 풍경입니다.

시원하게 배출하시고 여법한 순례길이 되기를 빌어봅니다.

 

글구 참좋은우리절 가람순례단도 길게 줄을 서서 세상사 근심을 해소할 그날을 그려봅니다.

 

11시 40분이 되어 경주남산하고도 서남산 입구 주차장에서 공양을 합니다.

뭐 저야 지역에서의 한끼 밥, 즉 공정여행을 강조하기도 합니다만

여행지에서 받아 든 공양은 언제나 우리를 실망시킵니다.

아마도 이번에 왔으니 몇 년, 아니면 다시는 오지 않을 것으로(?) 판단하신 음식점주의

속내가 부끄럼 없이 그대로 드러나는 것일까요?  아니면??? 

어찌되었든 푸대접에 실망하신 분들의 궁여지책이 아닌가 합니다.

 

하지만 말로만 관광활성화를 외치지 마시고 

따뜻한 밥 한그릇 마음으로 대접하는 성의를 기대합니다. 

그러면 굳이 바리바리 싸들고 관광하는 아름다운(?) 풍습은 사라지지 않을까요??

준비해 주신 공양주보살님을 비롯한 보시의 손길에 감사를 드립니다.

 

오늘 오르게 될 남산의 앞을 지키는 소나무입니다.

소나무 뒤편으로 불국정토의 모습이 숨겨져 있답니다. 

 

가운데 가장 높은 봉우리가 금오산 정상입니다.

이해를 돕자면 앞에 보이는 산 전체를 남산이라 하고 

오른쪽 가장 높은 봉우리가 494m의 고위산, 가운데 높은 봉우리가 금오산(468m)이지요.

오늘의 답사코스는 왼쪽 배리 삼존불에서 시작하여 삼릉, 상선암을 거쳐 바둑바위에 올라

경주시내를 조망 한 후 등산로로 하산하는 4시간여 산행길입니다.

 

오늘 우리를 안내해 주실 남산연구소의 유정숙보살님이십니다.

보살님의 주장인즉 "남산을 보지 않고 경주를 보았다고 말하지 말라"입니다. 

 

뭐 무장들이 대단하군요.... 

마스크나 두건으로 얼굴을 감싸고,  배낭을 걺어지고 등등등.......

 

배리 삼존불 가기전 만나는 망월사입니다.

망월사는 오래된 사찰은 아니구요...

다만 대한불교원효종의 총본산이었던 사찰이랍니다. 뭐 그 정도?? 

솟을대문 형식의 문이 특이하고 남산 오르는 길에 있기에.......

 

배리 삼존불입니다.

배리라 하니 지명같지요?? 맞습니다. 맞고요.

다만 배리라는 지명은 신라때 재상이던 유렴이 재를 지낼 스님을 초빙하였는데

오신 스님의 행색이 너무나 초라하더랍니다.

당근 스님을 우습게 대하게 되고, 이에 스님은 소맷자락에서 사자를 꺼내타고 사라져버립니다.

유렴은 그제서야 잘못을 깨닫고 밤새 엎드려 절하며 빌었고

이에 동네사람들이 "있을때 잘혀"하면서 비꼬아 절 잘하는 동네 즉 배리(拜里)라 했답니다.

현재 법정동 명칭은 한문을 사용하여 배동(拜洞)이라 불린답니다.

 

그 배동에 계신 세분의 부처님이라 하여 배리삼존불입니다.

가운데 계시는 분은 시무외 여원인을 하고 있어 미륵불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합니다만

좌우에 계신 관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의 협시로 보아 아미타부처님이 맞답니다.

특히 이러한 수인은 고(옛) 신라 시기의 유물에서 흔히 볼 수 있다니 뭐.......

부처님의 광배는 유실된 것으로 보이며, 다만 신광은 부처님고 한몸으로 제작되었습니다.

 

왼쪽 협시는 관세음보살로 정병을 들고 두광에 불상이 조각되어 있구요.....

조각솜씨는 다소 밋밋합니다.

오른쪽 대세지보살님은 형태가 뚜렷하고 왼손에 불경을 쥐고 있습니다.

 

근데 자료를 볼때마다 느낀것이지만 좌우가 제멋대로입니다.

물론 설명하시는 분도 마찬가지일때가 많구여....

부처님이나 절집의 좌우는 이렇게 합시다(하면 됩니다).

즉 보는 사람이나 설명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좌우를 판단하지 말고

부처님이 계신 곳에서 왼쪽, 오른쪽을 구분해야 합니다.

아래 그림상의 오른쪽은 부처님의 왼쪽이니 관세음보살이구요,

왼쪽은 부처님의 오른쪽이니 대세지보살 뭐 이렇게 말입니다.   

 

한 가지 아쉬운 것은 보호각을 세워 부처님의 미소를 볼 수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 자료를 보면 부처님의 미소가 환상적이라는데 말입니다.

특히 이 세분의 불상은 현 위치 인근에 흩어져서 누워계신 것을

1923년경 한 곳에 모아 세워놓았답니다.       

 

아래 보살님읜 오른쪽의 대세지보살님 이십니다.

두광에 새겨진 화불이 뚜렷하지요????

 

보호각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입니다.

뭐 문화재적 가치를 말하려는 것이 아니라(전혀 없음)

건축적인 면에서 기둥은 배흘림과 민흘림이 섞여있구요,

맞배지붕에 종보나 대들보는 물론 종도리, 중도리, 주심도리, 외목(출목)도리 등과

연등천장의 서까래, 화반(동자주), 장혀, 첨자, 익공 등을 두루 볼 수 있습니다.  

 

 

 

처음 뵌 부처님께 정성을 다해 기도를 드립니다.

시원스럽게 다라니를 합송하는 스님과 불자님들....... 

 

삼존불 뒤 편의 건축부재들입니다.

아마도 주초석들이 아닌가 합니다.

 

사실 삼존불 도착전 왼편에 삼불사가 있습니다.

얼핏 가정집 같아 보입니다만 3층석탑과 오른쪽의 산신각이 절집임을 말해줍니다.

 

삼불사 산신각입니다.

정면,측면 1칸의 작은 산신각입니다만 팔작지붕의 위용은 그대로입니다.

 

배리 삼존불에서 오던길을 내려와 왼편으로 500m가면 삼릉이 있습니다.

삼릉이니 말 그대로 3기의 묘가 있다는 것이지요.

물론 삼릉은 불교유적은 아닙니다만 답사에 차별을 두면 안되겠지요??

삼릉의 주인공은 아달라왕과 신덕왕, 경명왕 등 세분이 주인이랍니다.

특히 아달라왕은 성씨가 박씨이니 박아달라왕이십니다.

그래서 사진을 찰칵했습니다.

참고로 아달라왕은 8대구요, 신덕왕과 경명왕은 54대와 55대라는군요.

 

사실 남산 소나무숲은 사진작가 배병호씨가 널리 알렸구요.... 

배병휴씨 또한 남산 소나무로 인해 널리 알려지게 되었답니다. 

이를 상생이라 해야 하나요?

근데 삼릉의 소나무는 모두가 능을 향해 머리를 조아리고 있답니다. 

 

삼릉골 목없는 부처님과 삼릉 마애관음상을 오르는 길입니다.

남산의 소나무숲을 산책하듯 오르는 신도들입니다.

소나무에서는 피톤치트라는 피로회복 물질이 품어져 나와

산책을 하면 상쾌한 기분을 느낄 수 있다는 해설사님의 전언입니다.

 

삼릉골 목없는 부처님은 목도 없고 손도 없지만 부처님으로서의 위엄은 그대로입니다.

특히 왼쪽 어깨를 타고 내려오는 법의자락 매듭(이를 영총이라 함)은 섬세하구요,

옷의 주름도 단아하기 이를데 없습니다.

혹자는 스님의 모습이라는 주장도 있다 합니다만 

목 부분의 삼도(見道, 修道, 無學道)를 보면 불상이 확실하다는 연구결과랍니다.

이 불상도 현 위치에서 100m 위쪽에 누워 계셨다는군요.

 

목없는 불상에서 40여m를 오르면 마애관음보살님이 계십니다.

마애(摩崖)란 낭떠러지 바위를 간다는 의미이니 양각,음각, 선각 등의 형태가 다양합니다.

특히 마애불은 수천만년 오랜기간 숨어계시던 부처님을 

사바세계에 드러내게 하는 엄숙한 작업입니다.

 

중생들이 부처님을 조각하는 것이 아니라

천상에서 강림하시던가 아니면 지하에서 솟아오른다는 의미이지요.....

정병이나 보관의 화불 등으로 볼때 관음보살님이 확실하구요.

154~5센티 정도로 발모양을 보면 통일신라시대에 강림(?)하신 것처럼 보인답니다.

별명은 "미스 신라"라 한답니다.  

신통한 것은 아랫입술에 붉은빛을 띠는데

원래 바위의 재질이 그렇다는 주장과 채색이라는 주장이 있답니다. 

 

마애관음보살님을 뒤로하고 200m를 오르면 마애선각육존부처님이 계십니다.

이름만으로는 어렵군요.

마애이니 바위에 새긴 것이 맞구요, 선각이니 양각이나 음각이 아닌

선으로 그려진 여섯분의 부처님이라는 뜻인가요??

와 이리 어렵노.......

 

아래 그림은 왼편 3존불인데요.

가운데 아미타부처님과 좌우 관음세지 두분 보살님이 연꽃을 공양하는 모습으로 볼 때

아미타여래의 래영불이 아닌가 합니다.  

즉 극락세계 아미타부처님께서 사자(死者)를 맞이하러 나오시는 장면입니다.

이런 모습은 극락전 등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거구요...

다만 바위에 선각한 것은 드문 예라 할 것입니다.

 

약간 뒤편에 계신 선각부처님은 사진상 뚜렷하지가 않은데요. 

가운데 석가모니부처님을 중심으로 왼편에 문수, 오른편에 보현보살이 협시하고 있습니다.

 

이를 종합해보면 이승과 저승 즉 현상세계와 사후세계를 나란히 하여 불상을 모셨으니

생사불이(生死不二) 라는 불교의 세계관을 극명하게 보여준다고나 할까요??

삶과 죽음, 이승과 저승, 크고 작음, 많고 적음, 미(美)와 추(醜), 부(富)와 빈(貧) 등

일체의 상대적인 개념을 벗어난 깨달음의 세계를 말함이 아닌가 합니다. 

 

육존부처님을 모신 바위 위쪽은 지붕과 배수로를 두었던 흔적이 있습니다.

긴 홈이 배수로 인듯 하구요, 네모난 구멍은 지붕부재를 걸던 곳이 아닌가 합니다.

 

남산을 오르는 중간에는 총 다섯마리의 거북이 있답니다.

첫 번째 만난 거북인데요...

이 거북이 정상에 오르는 날 남북이 하나가 된다나?? 아님 말구요.. 

근데 거북이 잘 안보인다구요????

사진으로는 그럴 수 있습니다.

산을 오르면서 힘이 들면 헛것이 보이게 되구요.....

그러면 처처불상이요 사사불공이라는 말이 실감이 난답니다.

 

원각이 보조하니 적과 멸이 둘이 아니라!

들리는 소리는 묘음이요, 보이는 만물은 관음이라!!!  

보고 듣는 이 밖에 진리가 따로 없으니 어허 시회대중은 알겠는가??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

 

저 멀리는 모자(母子)거북이 소나무에 가려 있군요... 

 

삼릉골 선각여래좌상입니다.

선각마애여래육존불에서 다시 500m를 오르면 또 한분의 선각여래좌상이 계십니다.

몸체는 선각을 하였지만 얼굴은 돋을새김(양각)을 하였지요.

근데 부처님은 잘생기지는 않았습니다.

그래서 알아듣기 쉽게 남희석이 이곳 부처님을 닮았다 하는 군요.

어째 남희석이 부처님을 닮았나요??

고려시대 출현하신 부처님이랍니다. 

 

삼릉계(溪) 여래좌상입니다.

명칭의 연유야 삼릉계곡의 물과 관계가 있는 듯 하구요....

항마촉지인을 하고 계신 석가모니부처님이십니다.

 

다만 현재의 부처님은 2009년경 대대적인 성형수술을 받으셔서

얼굴과 수인 광배 등이  아주 말끔합니다.

보살님 한분께서 "남산부처님의 느낌이 오지 않는다" 하시니 한말씀 올립니다.

성형수술을 받으신 후 2년도 채 되지 않아 "아직 붓기가 덜빠져서 그런거"라고.......

 

아래 부처님은 성형수술을 받기 전의 모습입니다.

어렵지 않게 자료사진으로 올립니다.

망가진 코 하며, 광배의 부재들이 바닥에 널려 있습니다.

 

성형수술은 어떻게 하느냐구요??

들은 이야기입니다만

 - 최대한 비슷한 재질의 화강암을 사용하여 모양을 만들구요,

    이음새 부분이나 얼굴 등 세밀한 작업이 필요한 경우에는

    돌을 가루내고 접착제를 사용한답니다.

 - 뭐 성형외과의 수술방법과 비슷하지요??

 

남산의 소나무입니다.

 

상선암의 모습입니다.

불국사 말사구요.......

물이 부족하여 수도꼭지를 부여잡고 젖을 짜듯 짜야만 겨우 물이 나온답니다.

 

상선암에 오르는 불자들입니다.

400여m가 넘는 남산을 잘도 오르십니다.

한 보살님께서 다 부처님의 힘이라 하는데요....

제 생각으로는 

부처님의 가피를 위해 그동안 해오신 절력(力) 즉 절의 힘이 아닌가 합니다.

그동안 절력을 쌓아오신 보살님들은 남산을 잘 오르시구요....

게으름을 피우신 보살님은 숨소리가 거칠기 그지없습니다.

절 하세요... 그러면 힘(力)이 생긴답니다. 

 

상선암 마애석가여래대불좌상이랍니다.

뭐 이름이 거창하지요??

마애는 이미 설명했구요,

사진에는 수인이 보이지 않습니다만 왼손은 앞으로 펴고 오른손은 무릎위에 얹었으니

항마촉지인이라 하는가요????  옷은 통견이랍니다.

당초에는 귀 뒷부분에 한떨기 진달래가 자라고 있었다 합니다만 성형수술로 사라졌구요.

그 크기에서 위엄과 자비가 넘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특히 저는 보지않았습니다만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문노가 혁명의 꿈을 안고 제사를 지내는 장면을 촬영한 곳이랍니다. 

 

부처님의 옆모습과 소나무가 어울리는가요?

 

다 함께 반야심경으로 기도를 대신하였습니다.

 

산 등성이에서 내려다 본 상선암입니다.

 

바둑바위 정상에서 바라본 경주 시가지입니다.

가운데 마을처럼 보이는 곳이 포석정입니다.

포석정은 경애왕이 술판을 벌이다 후백제의 견훤에게 잡혀 죽은 곳이라는 말도 있지만

뭐 믿을만한 기록은 아닌것 같구요.

 

오른쪽 가운데쯤 멀리 보이는 숲이 박혁거세 등이 잠들어 있는 오릉이랍니다. 

여기에는 재미있는 이야기가 전하는데요.

신라시조인 박혁거세가 이승을 하직하자 왕과 왕비의 시신을 합장하고자 하는데,

큰 뱀이 방해하므로 오체(五體)를 각각 나누어 장사지냈으므로 오릉이라고 하며

또는 뱀 사(蛇)자를 써서 사릉(蛇陵)이라고도 했답니다.

 

하지만 삼국사기에 의하면 

5릉은 박혁거세·알영왕비·남해차차웅·유리이사금·파사이사금과 같은

박씨 왕가의 초기 능묘로 전해지고 있다고 한답니다.

다만 시간관계상 직접 둘러보지는 못했습니다.

 

바둑바위 에서 경주 시가지 감상에 열중이신 경주보살님과 경희보살님이십니다.

경주보살님께서 경주에 오셨군요.

 

사진을 보니 스님께서 전주길을 재촉하시는군요.

무설설법이라! 했으니 말없는 가운데 설법을 하신다는 이야기입니다.

말 없이 몸을 돌리시니 이제 그만 하산하자는 말씀이 아닙니까??

참좋은우리절 신도님들 무설설법을 잘도 알아듣는군요.

 

귀로에 촬영한 석양입니다.

뜨는 해, 지는 해로 이름을 지어놓았지만 항시 그자리에 있는 걍 해일뿐입니다.

 

군자란이 핀지 보름여가 지나니 지기 시작하는군요.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라 했지요?

열흘 붉은 꽃이 없다는 말이던가요?

 

김제 어느 밭에서는 100억원이 넘는 돈다발이 나왔다지요??

분명히 자기 것이라 해서 땅속에 묻어두었는데 알고보니 자기 것이 아니더군요.  

세상일이란 그런겁니다.

 

구례 사성암 가는 길 섬진강변 벚꽃이 만발했다 하더이다.

 

남산!!  경주 남산!

단 하루 아니 단 네시간 남산을 보고서 남산을 보았다고 말하려니 오금이 저립니다.

하지만 서해바닷물을 다 마셔봐야 서해바닷물이 짜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단 한방울의 물을 맛보고도 오감을 말할 수 있습니다.

단 네시간을 경주에 머물렀다 하여 신라천년의 향화를 맡았다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제가 본 것은 남산입니다.

남산의 향기입니다.

남산에 계신 부처님이십니다.

 

천축의 부처님께서는 천산을 넘고 타클라마칸 사막을 건너 중국에 오셨고,

다시 300년 세월을 기다려 해동국에 출현하셨습니다.

그리고 1500년 세월이 흐른 지금에 그때 그 모습을 볼 수 있어 행복했습니다.

남산!! 다시 보러와서 며칠을 머물러야 직성이 풀릴 것 같습니다.  

불기 2555년 4월 9일  다녀오고 11일 쓰기를 마치다.

 

 

               헤림 합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