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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산회상

옥천을 마시다3

by 혜림의 혜림헌 2011. 3. 14.

 

옥천을 마시다 세번째 이야기입니다..

 

 가람을 순례하는 뜻은 누구에겐가 "어느 곳을 다녀왔다"라는 자랑을 하기 위함이 아닙니다.

절집 깊숙히 담겨있는 참 뜻을 알기 위함입니다.

또한 그 뜻을 나의 삶에 회향하기 위함입니다.

 

옥천사를 말하면서 청담스님을 그냥 지나칠 수는 없습니다.

청담스님(1902-1971)의 속명은 찬호(讚浩), 법명은 순호(淳浩), 법호가 청담(靑潭)이십니다.

대한불교조계종의 총무원장과 종정을 두 번 역임하셨습니다.

출가 동기가 거시기 합니다.

 

어느 해 여름, 진주성 서장대에 바람을 쐬러 올라갔다가

바로 밑에 있는 호국사에 내려가 물 한바가지를 들이키는데 스님 한 분이 말을 걸어왔답니다.

“학생, 물이 시원하지요?” “예, 시원합니다.” “시원한 것은 물이 시원한 것이요? 학생 마음이 시원한 것이요?”

이로부터 불교란 것을 처음으로 알게 되었답니다.

그 스님은 포명(抱明)스님으로서 유명한 불교학자였다 합니다.

정말로 마음이 시원한 것입니까???? 아니면 물이 시원한 것입니까???

오늘의 화두입니다.

 

스님은 진주농업학교를 졸업하고 25세에  일본으로 건너가 송운사에서 행자로서 고행하였다 합니다.

이후 귀국한 26세시 고성 옥천사에 주석하시던 박한영 스님을 은사로 출가득도(出家得度)하셨으니

옥천사가 청담스님의 출가본사인 것입니다.

자세한 것은 인터넷 등에서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청담스님 부도 및 탑비)

 

 

 청담스님은 서울 우이동 삼각산 도선사를 확장하여 호국참회도량을 개설, 수천 신도들이 참회토록 하였고

1969년 총무원장에 취임하여 종단발전에 헌신하시다가 1971년  11월 15일 홀연히 입적하셨습니다.

세수 70세, 법랍 45하(夏)이니 여기서 세수는 세속의 나이를 말함이요 법랍은 출가연수를 말합니다.

 

삼각산 도선사 다비장에서 다비하니 오색찬란한 사리 15과가 출현하여 출가본산인 옥천사와

노년에 주석하시던 도선사, 6.25 때 10년 동안 수행하시던 문수암 등 3개 사찰에 사리탑과 탑비를 세웠답니다.

(참고로 문수암은 옥천사에서 머지 않은 암벽아래 자리잡고 있습니다)

 

(청담스님 행장을 기록한 탑비입니다)

 

탑비는 월정사 조실을 지내신 탄허스님께서 짓고 쓰셨다 합니다.

5월 가람순례시 다녀왔던 월정사 주련 등에서 보았던 글씨를 닮았지요????

 

 

 (봉하마을 정토원 가는 길입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께서 이땅을 하직하신지 어언 40여일이 가까워 옵니다.

지난 5월 월정사 가는 관광버스안에서 노대통령님의 서거 소식을 들었었는데요......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경쟁에서 이기는 교육을 하라 합니다.

자식에게는 반에서, 학교에서, 수능에서 1등을 하라 합니다.

과연 1등의 가치가 그렇게 위대한 것입니까?

 

우리는 뉴스를 통해서 머리좋고, 잘났다는 인재들이 인류의 보편적 가치인

민주주의와 인권, 사람사는 세상을 위해 노력하는 가를 들어보셨습니까??

 - 그 좋은 머리와 가진 권한을 자신의 영달만을 위해 사용하지 않는지....

 - 그 좋은 재주를 교묘한 방법으로 법망을 피하여 민주주의와 인권을 짓밟는데 사용하지 않는지...

 - 그 좋은 머리로 범죄행위를 하면서 그저 실정법의 테두리 벗어나기 위해 사용하지 않는지....

 - 그 좋은 머리를 인류사회를 파멸하는 범죄를 저지르는데 사용하지 않는지....  

 - 그 좋은 머리를 모아 만든 법이 악법은 아니었는지......

 - 그 좋은 머리로 만든 법이 인권을 파괴하고, 자유를 억압하고, 민주주의를 말살하는 법은 아닌지...

 두눈 바로 뜨고 살펴보아야 합니다.

 

히틀러의 나치정권을 지탱하던 사람들도 소위 말하는 지식인이었습니다.

과거 독재정권을 유지하는 유신헌법을 만든 사람도 잘나가는 법조인이고 법학자였습니다.

일제시대 동족을 탄압하던 앞잡이도 소위 잘 배우고 잘사는 이들이었습니다.

그들을 탓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바로 세워야 합니다.

잘 배워서 일류사회, 국가와 민족을 위해 바로 사용하도록 뜻을 바로 세워야 합니다.

1등 되기를 가르치기 보다는 국가사회에 이바지하는 바른 삶을 가르쳐야 합니다.

 

 (정토원 가는길입니다)

@늘어진 줄마다에

노짱님을 추모하는 글이 빼곡합니다.

도대체 왜??  몇시간씩 버스타고, 기차타고, 아니면 자가용을 몰고 이곳까지 왔을까요??

심리학자들, 정신분석학자들이 이를 분석하려 합니다만.....

참으로 어리석은 일입니다.

참으로 묘오한 일입니다...

 

 

(당신을 기억하겠습니다)

 

어떻게 당신을 기억해야할까요??

노 전대통령께서 만들고자 하였던 세상은 사람사는 세상이었습니다.

지위고하를 구분하지 않아 반칙과 특권이 인정되지 않는 그런 세상이었습니다.

민주주의와 인권이 보장되는 사회였습니다.

 

가진 자, 지위가 높은 자를 증오하기 보다는 인정하는 사회였습니다.

다만 누구든지 그들을 향해 잘못되었다고 큰소리 칠 수 있는 사회였습니다.

 

정권이 바뀌고......??????????????????

증오는 커지는데 큰소리 치기가 겁이납니다.

 

 

(봉화산 정상에 모셔진 호미든 관세음보살상입니다)

 

봉화산 정상에 오르면 사방이 툭 트여 속까지 시원합니다.

정토원 가는 길목에도 비슷한 모습의 보살상이 모셔져 있지만요.....

 

이 보살상은 관음개발성상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으니 그 유래가 남다릅니다.

1959년 가난한 나라에서 이승만의 독재가 극심하니 농촌은 피폐하고 희망이 없습니다.

그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동국대 불교학과 학생회장이던 선진규(현 정토원 원장)가 

대학 총장에게 청원을 하여 인조석(씨멘트)으로 개발성상을 세우게 됩니다.

특별히 관세음보살상이면서도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호미를 든 상을 모신것이지요....

그리고 한문서당을 열고 농촌계몽운동에 투신하게 됩니다.

 

그후 개발성상이 풍화로 부스러지자 이번에는 FRP(배 만드는 재료)로 다시 세웠구요..

몇 번의 비바람에 가벼운 성상이 무너지자 선진규와 뜻을 같이했던 동지 한사람이 제안하여

화강암으로 개발성상을 다시 세우니 그때가 2005년이요. . 현재의 성상이랍니다.

부처님의 자비행을 향한 그들의 노력이 너무나 아름답습니다. 

 

 (개발성상 앞 봉화산 정상에서 바라본 정토원입니다)

 

 

현재의 정토원은 선진규님의 원력이 고스란히 담겨진 포교당입니다....

자세한 것은 홈페이지 참조 후 후 후 후 ....

 

(정토원 수광전입니다)

 

이곳에 노무현 전 대통령님의 영가가 모셔져 있습니다.

오늘도 찾는 이가 헤아릴 수 없을 정도구요.....

 

 

(정토원에서 부엉이바위쪽으로 내려오다 만나는 마애불입니다)

 

시무외 여원인을 한 수인으로 보아서는 미륵부처님 같은데요.....

현재 마애부처님은 누워계십니다.(아마 바위가 무너져 내린 듯 합니다)

옆으로 촬영한 사진이 아니라는 말씀이지요....

근데 못보고 오셨다구요??????

그래서 앞사람을 잘 만나야 합니다......

선지식을 만나면 더할나위가 없지만요..

 

 

(부엉이 바위입니다)

 

??????????????????????

 

 

(아주 작은비석을 세우기 위한 작업이 한창입니다)

 

?????????????????????????????????????

참 멀리 왼쪽에 보이는 것이 사자바위입니다...

 

 

(딴나라당과 족벌신문들이 아방궁이라 외쳐대던 노 전대통령 사저입니다)

 

눈도 없나 ????????????????

아니면 아방궁이 무엇인지도 모르나??

앞쪽은 생가를 복원하는 공사가 한창이더군요...

 

 

(노 전대통령 분향소 입니다)

 

"지못미"는 지켜드리지 못해 미안합니다란 뜻이더군요....

지켜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아직도 줄을 서야 조문을 할 수 있습니다.

 

 

(봉하 마을회관입니다)

 

지금쯤 모내기를 마치고 주민들이랑 모여서 탁배기 한잔 하면서 지낼 그분을 생각하니....

우리는 자신을 지키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그런데 혼자만의 힘으로는 안됩니다.

잘 찍어야 합니다..........

 

 

(마을회관 앞 임시 기념관이자 서명장소이자 그런 곳입니다)

 

그분의 생생한 육성을 들으며 끝내 눈물을 닦지 않을 수 없습니다.

자유와 자존을 이야기 하고 사람사는 세상을 이야기 합니다.

아주 머언 다른나라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의 이야기 입니다.

그래서 눈물이 납니다.

 

 

 (이제는 .................)

 

"당신은 영원한 우리의 대통령이십니다" 를 뒤로하고 아쉬운 발걸음을 옮깁니다.

 

지허스님은 선가의 고독을 열반경을 인용하여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 수행자는 모름지기 고독해야 한다.

 - 왜냐 하면 자기 자신과 싸워야 한다는 것, 그 자체만으로도 벅찬 일이기 때문이다.

 

당신은 고독하십니까???

당신은 고독이 두려우십니까????

 

긴 여행 수고하셨습니다.

 

### 김해 봉하마을에 세워질 비석에는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입니다"라는 글귀가

        너럭바위 형태의 자연석에 새겨진다.고 합니다.

        깨어있는 자 만이 권리를 행사할 수 있습니다.

 

 

                 불기 2553년 6월 27일 옥천사와 봉하를 다녀와서 혜림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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