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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 산 사

13. 전시행사는 여기서! 처영기념관

by 혜림의 혜림헌 2026. 2. 21.

금산사 천왕문을 지나 왼편에 큰 규모의 건물이 보입니다.

서산·사명대사와 함께 임진왜란 구국 삼화상이 뇌묵당 처영입니다.

처영스님은 한산·진주대첩과 함께 임진왜란 3대첩으로 불리는 행주대첩(1593)에서 700여 승병과 함께 참여하여 공을 세웁니다.

선조로부터 정충장군이라는 직책을 받았는데 금산사는 건물을 짓고 그의 이름을 딴 이름표를 붙여 주니 바로 처영문화기념관입니다.

 

김제에서 난 처영스님은 20세 남짓에 금산사에서 출가를 합니다.

처영은 휴정스님의 전법제자로 유정스님과 절친한 도반이었습니다.

처영은 금산사와 인연이 깊었음에도 조사전에 봉안된 한 점의 진영 외에는 이렇다 할 기념물이나 행사도 없었습니다.

그에 비해 땅끝 해남 대흥사에는 스승인 휴정, 도반인 유정과 함께 표충사에 진영이 봉안되어 오늘날까지 공적을 기리고 있습니다.

 

뇌묵당 처영스님을 기리는 금산사 처영문화기념관을 알아봅니다.

처영문화기념관은 연면적이 661(200)인 목조건물입니다.

앞면 11, 옆면 5칸의 다포계 겹팔작집으로 지어져 웅장합니다.

대형 목조건물은 내 진주를 세우지 않고서 지붕의 하중을 지탱하기 어려우니 각 10개의 기둥을 양쪽으로 세워 들보를 받치게 합니다.

실내기둥과 바깥기둥은 퇴보로 결구하여 지붕과 서까래, 대들보로 이어지는 하중을 이겨내고 실내를 넓게 구성할 수 있도록 합니다.

이 때문에 가운데 3칸은 장애 없이 탁 트인 시야를 확보할 수 있어 대규모 행사가 가능한 200여평의 실내를 확보하고 있습니다.

우물천장 장식은 단청을 하기 전이어도 화려함을 뽐내고 있습니다.

 

거의 모든 사찰에서 느낌은 최신 건물도 시대에 동떨어집니다.

무릎 아픈 노인을 고려하지 않고 입식이 아닌 좌식을 고수합니다.

그러다 보니 전시행사장도 신발을 벗고 들어가야 하는 불편이 있고 이는 새로 지어지는 건물에서도 고려되지 않고 있습니다.

이제는 입식생활을 고려한 사찰건축을 기대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