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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 산 사

7. 실천에 실천을 더한 태공당 월주 승탑

by 혜림의 혜림헌 2026. 1. 12.

돌미륵을 지나 몇 발자국에 태공당 월주스님 승탑이 있습니다.

스님의 승탑은 군산 은적사, 속초 보광사에서도 자취를 기립니다,

두 사찰은 월주스님의 상좌인 성우·석문스님의 주석과 관련됩니다.

 

승탑은 모악·화율봉 능선에서 광교원으로 뻗은 둔덕에 있습니다.

팔각원당형 승탑은 4각 지대석에 받침돌은 하··상의 3단입니다.

하단 대석은 8각 층급의 하층과 8각 복련의 상단으로 2층입니다.

지구형 중단은 압축해 높이를 낮추고, 띠를 둘러 하나를 말합니다.

상단은 앙련이 화려한 운문을 받쳐 검소하지만 누추하지 않습니다.마름모형 하··상단의 3단 기단은 안정감과 상승감을 살렸습니다.

8각 몸돌에는 태공당월주대종사지탑(太空堂月珠大宗師之塔), 염주, 한반도 지도, 삼법인, 비둘기, 발우, 우물정(), 책을 새깁니다.

이는 지구촌공생회를 비롯한 스님의 일관된 삶을 그리고 있습니다.

상륜은 일반 승탑의 서까래, 기와, 복발, 보개, 보주가 비슷합니다.

검이불루 화이불치(儉而不陋華而不侈)! 검소하지만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게 보이지만 사치스럽지 않은 높이 3.29m 승탑입니다.

 

월주스님은 1935년 정읍시 산외면 원정마을에서 태어납니다.

정읍농고 졸업 후 1954년 속리산 법주사 금오스님 회상에 듭니다.

1961년 금산사 주지가 되고 2021년 금산사와의 60년을 마칩니다.

1966년 조계종 중앙종회 의원으로 선출된 이후 총무원 교무부장, 총무부장, 종회의장, 총무원장, 금산사와 영화사 조실을 지냅니다.

현재 금산사의 모습은 월주스님의 손길이 절대적이었음을 압니다.

 

서울 광진 아차산 영화사에는 석탄일 제정기념비가 서 있습니다.

1945년 미 군정청은 남한에서 기독탄신일을 공휴일로 지정합니다.

하지만 부처님오신날은 불교전래 1,600년이 지나고 국민 대다수가 참여하는 축제일임에도 정부수립 후에도 공휴일 지정을 미룹니다.

1960년대부터 조계종단은 공휴일 지정을 촉구하다가 19707월 월주스님이 교무부장에 취임하면서 본격적인 행동에 돌입합니다.

월주스님은 전국 불자를 서울에 모아 공휴일 지정시위를 합니다.

법정스님은 불교신문에서 부처님오신날 공휴일 지정을 촉구합니다.

법적 사항은 독실한 불자인 용태영 변호사가 무료 변론을 합니다.

1975년 부처님오신날 공휴일이 지정되니 영화사 비에 기록합니다.

 

스님은 1980년 대한불교조계종 17대 총무원장이 되었습니다.

불행히도 신군부는 19801027일 전국의 사찰을 침탈합니다.

수많은 스님들이 서빙고분실 등 전국의 군 보안부대로 끌려갑니다.

출가자가 아닌 일반인들도 참기 어려운 모욕과 고문을 당합니다.

스님들의 육신이 무너지고 정신은 피폐해지니 10.27법난입니다.

총무원장 월주스님도 국군보안사령부 서빙고 분실로 불법 연행되어 조사를 받고, ‘총무원장직을 사직한다.’는 문서에 날인을 당합니다.

스님은 1994년 다시 대한불교조계종 28대 총무원장에 당선됩니다.

1998년 총무원장 선거에서는 1980년 법난으로 6개월 만에 강제로 사직당했음에도 총무원장 중임금지 위반이라는 공격을 당합니다.

스님은 이들의 주장을 수용하여 총무원장 선거에 나서지 않습니다,

 

이후 스님은 깨달음의 사회화를 실천하는 데 매진합니다.

스님이 설립한 지구촌공생회는 지구촌 곳곳에 자비를 실천합니다.

동남아의 오지마을에 위생적인 식수를 공급하는 우물을 팝니다.

배움에 목마른 아이들을 위해 학교를 지어주고 학용품을 전합니다.

굶주리는 북녘 동포를 돕는 활동을 줄기차게 이어갑니다.

일제 강점기 피해를 입은 위안부 할머니를 살뜰히 보살핍니다.

그 사이에도 금산사의 제모습 찾기는 계속 되었습니다.

시작이 있으니 끝이 있으며, 태어났으니 죽음이 있습니다.

한여름의 열기가 뜨거운 2021722일 세연을 정리합니다.

세상 나이 87, 절집 나이 67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