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많은 이들이 속세를 떠나고자 하더이다만 저는 속세가 좋습니다.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악다구니를 쓰고 싸우고, 거짓 소문을 내어 상대를 곤경에 빠뜨리고,
감언이설로 속여 이익을 챙기고, 자그마한 권력을 남용하여 갑질을 일삼고,
자신을 뽑아달라고 허리가 부러지도록 고개를 숙이는 선거판까지 .......
요즘 전해오는 소식이 이러하니 속세를 떠나고픈 그 심정을 십분 이해합니다만
그래도 저는 그 사바세계에서 걍 살렵니다.
다만 가끔씩 속세를 떠나 법의 세계에 머무르고는 싶습니다.
- 참좋은우리절 불교문화대학 18기 학인들이 속세를 떠난다고 하여 동행을 하였습니다.
속리산 법주사!!! (2018년 6월 2일)
세속을 떠나 있는 산이니 속리산이요! 법이 머무르는 곳이니 불국토임다.
절집의 명물을 야그하면 그렇지만 법주사의 명물이 팔상전에서 미륵부처님으로 빠뀌었지요.
법주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5교구 본사임다.
서기 553년에 의신 조사가 창건했다 하나 의신조사가 누구냐고 물으신다면 기록이 없답니다.
절이름 법주사는 불경을 나귀에 싣고 돌아와 머물렀다는 설화에서 유래되었답니다. 불경이 불법!
776년에 진표율사가 중창을 했고 그의 제자에 의해 미륵신앙의 중심도량이 되었다 하는군요.
진표스님은 변산 부사의방(不思議房)에서 목숨을 던지는 망신참회((亡身懺悔)를 통해 법을 얻고
금산사, 법주사, 금강산 발연수사 등을 중창하였다 합니다.
- 그래도 법주사 하먼 목조5층 목탑입니다. 함 보시고 출발합니다.
- 법주사 사하촌입니다. 사하촌은 절 아랫마을 정도???
(혹 금낭화를 아시는 지요??? 사실 좀 더 화려한데....)
(세월을 이고 있는 밤나무 등걸)
- 법주사 일주문입니다.
일주문은 건물의 옥외간판과 같은 역할을 합니다.
그 이름을 보고 절집을 이해하게 되는 것입니다.
호서 제일가람이라 편액을 달았으니 호서지방 제일의 절집이라는 자부심이 묻어납니다.
또 하나 속리산 대법주사라는 편액은 속리산 산중에 있는 큰 절집 정도??
근데 그 글씨가 좀 특이하군요.. 대(大)자 둘을 겹쳐 썼어요.
- 절집 앞에서 만난 노 보살님...
점심공양 하셨냐고 여쭸더니 "부처님은 절대 굶겨 보내지시는 않는다"고 하네요.... 건강하세요....
- 법주사 오리 숲길... 구경하시지요...
오솔길의 길이가 십리의 절반 오리가 되어 오리숲이라 한답니다.
- 오리숲길 언저리에 만난 부도전!!!
가끔자료를 보다 보면 부도밭이라는 소개글을 봅니다.
스님들의 사리를 모신 밭이라는 표현인데요..... 이는 잘못된 표현입니다.
스님들의 사리를 모신 큰 집이라는 뜻으로 대궐 전(殿)자를 써야 맞습니다.
- 속리산 사실기비입니다.
1666년(현종 7)에 송시열(宋時烈)이 글을 짓고 명필 송준길(宋浚吉)이 글씨를 썼답니다.
내용은 속리산 수정봉 위에 있는 거북바위의 내력과 미신타파를 주장한 글이랍니다.
- 금강문 앞에 돌기둥이 있는데요........
자료가 없어 그렇지만 장생표?가 아닌가 합니다만.....
- 금강문과 천왕문입니다.
근데 비닐 연등이 건물을 에워싸고 있어 건물보기가 어렵군요.
조금 멀리서 천왕문과 팔상전이 보이는군요.
- 법주사 철 당간입니다.
당간지주는 들어봤지만 철당간은 못들어 봤다구요??
당간지주는 당간 즉 간대가 사라진 기둥만 남아 있는 것을 말하구요......
절집 행사를 알리는 당 즉 깃발을 달던 구조물입니다.
근데 어떻게 깃발을 달았쓰까잉?? 하시니 답이 궁합니다.
추측컨데 처음 간대를 세울 때 도르레를 설치하여 당을 다는 것이 있구요.
- 그래도 법주사 하먼 팔상전입니다.
현존하는 유일한 목탑인 팔상전(국보 제55호)은 사찰 창건 당시에 의신대사가 처음 지었고
신라 혜공왕 12년에 진표율사가 중창했으나 정유재란 때 불타 없어졌답니다.
1602년부터 사명대사(송운 유정)과 벽암대사에 의해 조선 인조 2년(1624)에 다시 복원된 것입니다.
현존하는 우리나라 목탑은 화순 쌍봉사 대웅전, 진천 보탑사 대웅전 등이 있는데요.
쌍봉사 대웅전은 1984년 화재로 소실되어 새로 지었구요, 보탑사 대웅전도 2009년 지어졌지요.
즉 문화재로서의 대접을 받을 만한 목탑은 법주사 팔상전이 유일하다는 겁니다.
1968년 팔상전 해체중수시 중앙의 심주(心柱) 밑에 사리장치가 발견되었답니다.
전각에는 사방 네 벽에 두 폭씩의 팔상도(석가여래의 일생을 8단계로 나누어 표현한 그림)를
모셨으며, 불단에 불상을 봉안하고 불상 앞에는 납석원불과 나한상이 모셔져 있습니다.
- 인증샷 관련 한마디만 할랍니다.
가끔 인증을 위해 사진을 부탁하는 경우가 있습니다만 매번 실망입니다.
우선 구도가 너무 잘못 잡혀서 사진이 엉망입니다.
발 앞으로 길게 쓸데 없는 공간을 두어 사진이 휑하구요.....
건물이 붕 떠 있어 안정감이 사라져버립니다.
사진을 촬영하실 때 쓸데없는 공간을 과하게 두지는 마십시요...
- 쌍사자 석등입니다. 이래보시면 국보이구요.
법주사에는 쌍사자 석등, 팔상전 옆 석등, 사천왕 석등, 약사전 앞 석등이 있으니 비교 바랍니다.
우리나라에 쌍사자 석등은 몇 개 안돼요....
합천 영암사지 즉 폐사지에 한 기, 나주 중흥사지던가요? 광주박물관에,, 글구 법주사에....
- 대웅보전앞 사천왕 석등입니다.
왜 사천왕 석등이냐고 물으신다면?? 화사석(네모난 구멍 뚫린 곳) 사이에
사천왕상을 조각해 모셔 그 이름을 득하였구요....
화사석 안쪽으로 대웅 두글자 보이세요?
- 팔상전 옆 석등...
미끈하게 잘 빠진 팔각의 간주석을 기둥으로 화사석 받침돌과 화사석, 옥개석,
한 마디로 잘 생기셨습니다.
- 약사전 앞 석등
- 대웅보전 앞 사천왕석등과 대웅보전.. 양 옆엔 보리수나무가....
- 대웅보전! 보물 제915호!!
중(2)층인 이 건물은 신라 진흥왕 14년(553년) 의신조사가 창건하였고,
인조 2년(1624년)에 벽암대사가 중창한 것으로 건평 170평, 높이 약 20m의 대규모 건물입니다.
내부에는 키 5.5m, 허리둘레 3.9m에 이르는 소조 3신불(三身佛)이 모셔져 있지요.
세분은 진여의 몸인 법신 비로자나불, 좌측에 수행과보로 나타날 보신 노사나불,
우측은 중생을 제도하기 위하여 여러 가지 화신으로 나투신 석가모니불상입니다.
- 왼쪽으로 진영각과 명부전 삼성각이 보입니다.
진영각은 스님들의 초상화를 모신 곳이구요, 명부전은 지장보살과 명부시왕을,
삼성각에는 산신과 칠성 독성을 모신 곳입니다....
- 희견보살상이군요.
희견보살은 향과 기름을 먹고 소신공양을 하신 분이랍니다.
약왕보살의 전신이라고 하구요.... 병고에 힘든 분들이 기도를 하먼 치유를 해 주신답니다.
- 원통보전인데요...
팔모지붕을 하고 있습니다.... 안에는 관세음보살님이 모셔져 있지요.
- 드뎌 미륵부처님이 보이는 군요.
법주사 미륵부처님은 조선 말 흥선대원군이 당백전을 주조할 때 기존 장육존상을 징발당한 후
원력을 모아 조성한 거대 불상입니다.
형제사찰인 금산사 미륵부처님이 훼손되어 다시 모실 때 정읍 태인 사는 김수곤이라는 갑부가
대시주로 나서서 거금 1만5천원을 내어놓습니다.
1935년부터 4년간 와세다(조도전)대학 출신의 근대 조각가인 정관 김복진을 불모로
현재 우리가 보는 금산사 미륵전 미륵불이 석고 재질로 완성됩니다.
이에 법주사에서도 장육전을 모시자는 논의가 이뤄지구요....
자금줄로는 역시 태인 사는 김수곤이, 불모로는 정관 김복진이 선정됩니다.
1939년 정관 김복진은 당시로는 최신 건축재료인 씨멘트를 가지고 불상 제작에 돌입합니다.
- 그러나 애고 슬픈지고....
1900년생 정관은 불과 41세의 나이로 감옥생활에서 얻은 병마를 이기지 못하고 이승을 하직합니다.
이후 미륵대불 불사는 행방과 6. 25를 거쳐 1960년까지 중단되고 맙니다.
우여곡절 끝에 1963년 미륵대불이 완성되지요....이른바 씨멘트 대불..........
근데1980년대 이 불상이 붕괴위험이 있으니 청동대불로 모셔야 한다는 운동(?)이 일어납니다.
여러사연을 만 든 후 1988년 현재의 거대한 청동대불이 완성되구요....
개금불사를 거쳐 오늘에 이릅니다.
- 당초 씨멘트 대불안에 모셔졌던 복장유물......
옛날 어린시절...울 엄니께서는 속터지는 일이 있으먼 "애고 복장터져"하셨지요.
복장은 불탑에 사리를 모시 듯 불상을 조성 한 후 부처님 몸안에 모시는 유물입니다.
불경이나 소형불상, 기타 소원을 비는 여러 귀한 물건을 넣어 생명력을 불어 넣는거지요.
그 복장이 터지먼 어찌 되겄습니까??
예나 지금이나 복장유물을 노리는 문화재 절도단은 가시지 않더군요.
- 법주사 철확.. 한마디로 무쇠솥입니다.
- 법주사 석연지......
미륵이니 뭐 미르 즉 용과 관계가 있다고도 합니다만 미륵도량에 물을 상징하는.......
미륵은 마이트레야로 미륵 상생경에서는 미륵보살로 도솔천에 계시구요..
이 땅에 오시먼 미륵하생이니 미륵부처님이 되십니다.
- 법주사 입구 좌측 바위에 새겨진 마애여래의좌상....
마애이니 바위에서 화현하셨구요, 여래이니 부처님, 좌상이니 의자에 앉아 계시지요.
허리는 잘록,어깨는 사각으로 당당.......옆 바위엔 낙서가........
- 공양을 마치고 세계인의 음료 코피 아메리카노 한 잔!!!!!!!
- 법주사를 둘러본 후 익산 미륵사지에 왔는데요......
- 미륵사지 서탑 복원공사가 막바지입니다...아니 탑은 이미 완성
완성된 모습은 6층!!
그것두 기존 씨멘트 부분의 씨멘트를 걷어낸 원래모습 정도로 복원을 하였습니다.
사실 불자 입장에서 아쉬움이 크지요......
웅장한 9층 석탑으로 원형을 살려 복원을 하였으면 하는데요...
근거자료가 없답니다....근거가!!!
기존 허물어진 모습에서 씨멘트를 걷어낸 정도가 가지고 있는 근거의 전부라는 말쌈......
- 일행에게 설명을 하면서 아쉬움을 표하니 안내원인 듯 한 사람이 핏대를 올립니다.
먼저 기존의 허물어진 6층의 모습 외에 서탑의 원형을 추정할 만한 자료가 전혀 없답니다.
상상만으로 복원을 할 경우 세계문화유산이나 문화재로서의 기능을 상실 한다나요????
문화재나 세계유산이라는 이름에 얽매이는 듯한 말에 불자의 아쉬움은 더합니다.
동탑은 우째 9층으로 복원하였을까???
동탑 복원 후 먹은 욕설이 차고도 넘쳐 서탑복원에 영향을 주지 않았을까??? 하니
동탑은 9층을 추정할 만한 무언가가 나왔었다나요???
우리 같은 문화재 문외한은 알아 들을 수 없는 주장.........
걍 상식에 상식을 더하먼 안되나요??
한 가지 예언을 하먼 서탑 복원공사 완료후 공개가 된다하먼????
문화재청은 또 다시 엄청 욕을 먹을 겁니다.......단연코........
- 사실 동탑에 대해 욕을 한 사람들이 인자 막 문화재랍시고 공부한 사람들이거나
그들을 안내하던 아마추어들이었거든요..... 저를 포함해서!!!!!!
세월의 무게를 켜켜이 이고 있기를, 고색과 고졸한 모습의 석탑을 기대한 잘못도 크거든요.
어차피 이름은 복원이었지만 새로 조성한 석탑인 것을.......
그렇다고 서탑을 그리 복원합니까?? 한 아마추어가!!!!
- 함께 해주신 진서스님과 불교문화대학 18기 여러분 !!
감사!! 감사!! 감솨아아앙.....
혜림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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