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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 산 사

18. 하생한 미륵불이 자리 잡은 미륵전

by 혜림의 혜림헌 2026. 3. 28.

금산사가 미륵도량인 이유는 대형의 미륵불이 있기 때문입니다.

11.8m의 미륵불을 품고 있는 건물이 국보 62호 미륵전입니다.

금산사 미륵전은 인조 13(1635)에 지어진 3층 목조건물입니다.

밖에서 본 미륵전은 3층이지만 안에서 보면 훤히 트인 통층입니다.

 

미륵불을 모신 법당을 용화전·산호전·장륙전이라고도 부릅니다.

금산사 미륵전은 1층에는 대자보전(大慈寶殿)’, 2층에는 용화지회(龍華之會)’, 3층에는 미륵전(彌勒殿)’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습니다

미륵전 1·2층은 앞면 5, 옆면 4칸인 반면 3층은 앞면 3, 옆면 2칸 크기로, 지붕은 여덟 팔()자 모양을 한 팔작지붕입니다.

옛 목조건물 중 유일한 3층으로 목탑과 유사한 가구를 보입니다.

미륵전 4개 진주(眞柱)는 목탑 심주처럼 기둥을 철로 연결합니다.

건물의 층별 추녀마루 네 곳에는 활주를 두어 무게를 지탱합니다.

전체적으로 규모가 웅장하고 안정된 느낌을 줍니다.

 

미륵전의 이름을 얻게 된 세 분의 대형 부처님을 알아봅니다.

가운데 미륵불은 실내에 봉안된 우리나라 불상 중 가장 큽니다.

미륵불은 높이가 11.82m에 달하니 장육상(5m)2배입니다.

좌측의 법화림보살과 우측의 대묘상보살은 높이가 8.79m입니다.

 

흙으로 빚은 미륵불상은 1935년 원인 모를 화재로 파손됩니다.

불상은 가산 김수곤이 15천 원을 시주하여 현재처럼 복원됩니다.

가산은 현 정읍시 태인면 갑부로 불교에 정진하여 금산사·법주사의 미륵불상, 정혜사 관음상, 내장사, 석탄사 등에 거액을 기부합니다.

이런 인연으로 가산의 무남독녀 몽련(夢蓮) 김진민은 미륵전 1층의 대자보전(大慈寶殿) 현판을 쓰니 이때 그의 나이 20대 중반입니다.

미륵전 2층의 용화지회(龍華之會)는 스승 성당 김돈희가 썼습니다.

몽련은 12세이던 1924년도 제 3회 조선 미술전람회에서 최연소로 입선하였으며, 1931년까지 16점을 출품하여 5점이 특선을 합니다.

확인된 몽련의 글씨는 정읍 정토사의 칠성각(七星閣) 현판과 주련, 금산사 미륵전 대자보전(大慈寶殿), 완주 위봉사 나한전(羅漢殿), 예산 정혜사 관음전(觀音殿), 서울 국립묘지 지장사 능인보전(能仁寶殿), 내장사 학명선사사리탑명(鶴鳴禪師舍利塔銘) 등입니다.

1912년생 몽련은 11세 때 불갑사(佛甲寺), 백양사 우화루(雨花樓) 편액을 썼으며, 불갑사 현판에 십일세불하당(十一歲不瑕堂) 김진민(金瑱珉)’이라 남겼으니 인연이 닿으면 지나치지 마시라 권합니다.

20대 결혼으로 12남매 엄마였던 몽련의 삶은 따로 확인 바랍니다.

 

주지 황성열은 미륵불상을 복원할 불모를 공모로 결정합니다.

불모 공모에는 스님 등 5명이 참여했다고 하는데 최종적으로 조선 최초로 일본에서 서양 조각을 공부한 정관 김복진이 선정됩니다.

정관이 공모에 제출한 114석고불은 계룡산 소림원에 있습니다.

정관은 27개월여 동안 모형과 틀을 만들고, 석고를 부어 미륵불을 제작하였으며, 19389월 만공스님의 점안으로 봉안합니다.

 

일부 전해 들은 이야기를 적어봅니다.

11.82m나 되는 불상을 어떤 방법으로 법당 안에 안치했을까 하는 의문은 중생들의 호기심이지만 풀어줄 기록은 전해지지 않습니다.

11m가 넘는 대형 구조물(불상)을 크레인도 없던 시대에 야외에서 실내로 옮겨 좌대에 세우는 공사는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그렇다면 현장에서 불상을 제작하는 방법을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찰흙도 아닌 석고 불상을 실내에서 제작할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다르게는 멀쩡한 3층 건물을 해체하여 불상을 세울 수도 없습니다.

가능한 방법은 불상을 여러 조각으로 나눈 후 다시 쌓으면 됩니다.

자른 부분을 다시 접착하고 흠을 깔끔히 메워야 함은 물론입니다.

마지막으로 곱게곱게 금박을 입히면 됩니다.

 

불상은 20141029일 국가등록문화재 제619호가 됩니다.

20067월 법화림보살상의 등에서 흙이 탈락되는 일이 생깁니다.

내부에서 복장유물인 후렴통과 직물, 산호, 호박 등이 발견됩니다.

보수를 하려는데 문화재가 아니라는 이유로 국비 지원이 안됩니다.

문화재 등록을 서두른 이유의 하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