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1. 가마라 알고 있는 연(輦)
문명시대의 교통수단은 자동차와 기차, 선박, 비행기입니다.
과거에는 말, 낙타, 소, 나귀를 길들여 교통수단으로 이용했습니다.
조선의 고위층은 관노비(丘史)가 들어주는 남여(籃輿)를 탔습니다.
이에 비해 여염집 여인들은 외출할 때 가림막 있는 가마를 탑니다.
가마와 남여는 사람을 위한 이동수단이지만 동력 또한 사람이란 점에서 대단히 차별적이고 비인간적인 교통수단입니다.
우선 속도가 느리고, 몹시 흔들리는 등 승차감도 좋지 못합니다.
가마는 최소 30㎏의 무게를 장시간 감당할 수 있는 체력과 균형을 유지할 수 있는 4명 이상의 숙련된 가마꾼을 필요로 합니다.
이처럼 비효율적인 가마를 타는 이유는 체면 중시 사회에서 신분을 과시하면서도 가마꾼이 곧 심부름꾼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렇지만 보통의 현대인이 누리는 물질문명은 노비 18명의 시중을 받던 양반들보다 더 편리한 생활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아상(我相)의 극을 달리는 가마는 사찰에서도 사용 되었습니다.
사찰에서 불사리, 불상, 탱화, 진영 등은 최고의 예우를 받습니다.
이들을 이동할 때는 향연(향가마)에 실린 향로가 길을 여는 가운데 화려한 연(가마)에 실어 이운하였습니다.
고려시대 왕사나 국사 등의 내로라 하던 스님들도 가마를 탑니다.
전주 경기전에는 어진과 향로를 이운하기 위한 가마가 여럿입니다.
이처럼 가마는 당대 최고의 예우와 장엄을 위한 도구였습니다.
다만 현재는 가마가 있었다는 사실도 확인하기 어려울 정도입니다.
사찰에서 가마는 낡고 오래된 창고에서 손잡이가 부러진 채 먼지를 뒤집어 쓰고 있으며, 그나마 별로 남아 있지도 않습니다.
누구나 한 번쯤은 타고 싶어 했으되 탈 수 없었던 가마입니다.
여자가 평생 한 번 빌린 가마를 탔으니 시집가는 날이었습니다.
죽은 이는 세상과의 공식적 작별을 하면서 꽃가마(상여)를 탑니다.
이제는 그나마도 리무진이라 불리는 영구차가 상여를 대신합니다.
아무리 잘난 사람도 가마를 타기는 글러 버린 시대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