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5. 사진 이전에 진영(眞影)
‘음식은 먹는 게 아니라 사진’이라는 쎌카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1839년 다게르의 사진기가 나오기 전까지는 그림의 시대였습니다.
우리는 사람의 얼굴을 중심으로 그려진 그림을 초상화라고 합니다.
반면 삼국시대 이래로 초상화라는 단어는 없으며, 진(眞)·영(影)·상(像)·초(肖)·진영(眞影)·영자(影子)·사진(寫眞)·영상(影像)·영첩자(影帖子)·화상(畫像)·영정(影幀) 등이 있을 뿐입니다.
사진이라는 용어가 꽤 오래전부터 쓰였으나, 사진기는 발명된 지 2백 년이 안 되고, 초상화라는 용어도 1백 년 전에야 등장합니다.
우리나라에서 진영 관련 기록은 백제의 아좌태자(阿佐太子)가 일본 쇼토쿠태자(聖德太子)의 상을 그렸다는 기록이 전해집니다.
인물화를 뜻하는 진영은 사찰에서는 스님의 초상화를 말합니다.
통일신라시대에 이르러서 깨치면 부처라는 선불교의 전파에 힘입어 상당수의 승상(僧像) 즉 초상화가 제작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신라 범일국사와 고운 최치원의 초상화가 다수 전해집니다.
조당집이나 쌍계사 진감선사비에 승상 제작기록이 나옵니다.
각 사찰에는 조사전(당)이나 국사전(당) 등의 편액을 단 건물이 있고, 내부에는 스님의 초상화나 조각상을 봉안하고 있습니다.
진영으로 봉안되는 인물은 사찰의 창건과 중창에 공이 컸던 스님과 역대조사, 국사나 왕사 칭호를 얻은 스님들입니다.
순천 송광사 국사전은 16국사의 진영이 봉안되어 있습니다.
부여 만수산 무량사에는 설잠스님의 진영이 봉안되어 있습니다.
설잠은 우리가 잘 아는 생육신의 한 사람인 김시습의 법명입니다.
조선시대 사대부의 초상화는 수염 한 올까지 세세히 묘사됩니다.
이와 달리 스님의 진영은 간결하게 정신세계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간결한 필치로 얼굴에서 수행의 깊이를 가늠하도록 그려집니다.
참으로 어려운 일입니다만 우리네 화승들은 그걸 해냈습니다.
진영에 참배하면서 선사들의 정신세계에 들어 봅니다.
(초의스님 진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