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산회상

당신은 곱게 늙어가고 계십니까?? 부석사 記

혜림의 혜림헌 2011. 9. 28. 14:34

 

- 오늘도 사찰마다에는 기도와 참선 등 수행과 각종 의식이 진행됩니다.  

 그 내용이 제 각각이고 그러다 보니

 어느것이 불교(부처님의 가르침)인가 의문이 들 때도 많지요.

 그럴수록 부처님 당시로 돌아가 살펴보는 것이 어떨까 합니다.

 부처님 당시 바라문들이 각종 의식을 복잡하게 만들어

 일반인들이 따라 할 수 없게 하고 그를 핑게로 많은 재물을 바치게 하는 등

 주민들의 삶을 더 어렵게 하는 일이 잦아졌습니다.

 이에 대한 반사작용으로 새로운 사상적 기류가 싹터 

 수행의 길을 떠난 이들이 많아지고 이들을 일컬어 사문이라 하였습니다.

 부처님도 그 중에 한 분이셨고 그 길을 올바로 찾아  제시하신 분이기도 합니다.

 

- 오늘도 신심 깊으신 신도들이 중심이 되어 절에 이익된 일을 많이 하십니다.

 허나 장한 신심을 가지신 분이 혹 가장 욕심이 많은 분이 아닐까 염려됩니다.

 신심을 바로 이해하지 못한다면, 욕심을 신심으로 잘못 알게 되고

 그러다보면 영험하다는 불상을 찾아 헤맨다던가 할 수도 있음이지요.

 개인의 욕심이 신심의 옷을 입지 않도록 지혜있는 불자가 되시길 바라면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바로 배우고, 우리의 전통과 문화를 이해하고,

 우리의 전통과 문화(재)에 녹아 있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찾아내어

 널리 중생을 이롭게 하는 일에 바로 썼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 참좋은우리절의 제35차 가람순례가 부석사를 행합니다.

 부석사 !! 사실 그 이름만 들어도 기분이 좋아질려고 합니다.

 그리해서 동화사에서의 조계종 포교사단 팔재계 행사도 뒤로 하고.......

 

- 부석사는 해동 화엄종주 의상스님께서 낙산사 다음으로 창건하신 절입니다.

 화엄사찰 답게 우주의 근본이치에 맞게 지어진 것으로도 알려져 있지만

 무엇보다도 무량수전이라는 걸출한 건물 하나로 부석사를 이름짓기도 합니다.

 그러다보니 부석사의 다른 풍광의 입장에서는 당근 억울하지 않을까 합니다.

 무량수전을 무령수전 답게 하기 위해 단계별로 쌓아놓은 석축과

 서방정토 무량수의 세계(무량수전)를 찾아가는 구간구간의 의미를

 다 무용지물로 만들어 버리니 말입니다.

 

(부석사 사하촌의 풍광입니다.)

- 사하촌의 정겨운 모습입니다. 카메라를 피하시는....죄송합니다.

 사실 따지고 보면 부처님만한 경영인도 없습니다.

 깊은 산속 식수마저 부족한 소백산 자락 봉황산 등성이에 절을 짓게 하고 

 1,300여년 넘는 세월동안 법향을 피우셨으며, 

 부석사를 중심으로 경제활동을 하여 생계를 해결하고, 자식을 대학 보내고 등등

 이 어찌 탁월한 경영인이라 아니할 수 있겠습니까??

 부처님의 이름으로, 부처님의 품안에서 살아가는 인류가 얼마나 되는지

 헤아려보지는 않았지만

 미국의 빌 게이츠나, 워런 버핏 등도 이 정도의 능력은 아닐 것이니 말입니다.

 

- 돈을 버는 것은 전통적으로 생산과 거래, 글구 투자에 의합니다.

 뭐 투자도 거래의 부분이기는 합니다만 전통적 의미는 아니죠....

 여기서 생산이란 농·공산물을 말함이요, 거래는 장사 즉 유통을 말합니다.

 투자라 하면 주식과 채권, 외환거래 등을 말한가요??

 아득한 과거에는 생산이 부를 이루는 근본이었지만

 점차 거래로 옮겨가게 됩니다.  즉 유통이 생산을 지배하게 되지요.

 근데 유통 역시 금융이나 주식과 채권, 외환거래를 잘 못하면.......

 

- 요즘 국 내외적으로 파렴치하고 비윤리적이며, 타락한 인간들.......

 저질의 자칭 경제학자라는 자들은 궤변수준의 논리를 개발하고

 양심을 저버린 월가 금융인들은 위험높은 고수익을 빙자한 상품을 개발하고

 청백리의 탈을 쓴 오리(汚吏)들은 그들의 논리를 수호하며 규제를 풀어줍니다.

 그들은 일반인들이 수백평생을 모아도 가질 수 없는 돈을 훔친(?) 뒤

 수천만의 정직한 시민들의 눈을 속이면서 또 다른 먹이를 찾아갑니다.

 학자에서, 기업인, 다시 관리로 말입니다.   속칭 회전문이지요.

 그들의 더러운 행태 뒤에는 실직자, 저축은행 투자자들의 눈물이 있습니다.

 

 다시금 부처님의 경제관이 생각납니다.

 일하지 않고 잔머리 굴려 사는 인간이 우글대는 세상을 어찌 정토라 할까요?

 우리는 학자의 양심을 저버린 자, 금융을 도박판으로 만든 자,

 그들을 방치한 자(관료)를 끌어내려야 합니다.

 어떻게???? 투표를 잘 해야 합니다.

 애구 절집 가다가 야그가 다른 곳으로 흘렀군요.. 

 

(부석사 은행나뭇길과 일주문)      

- 아름다운 가로수로 이름 높은 부석사 은행나무입니다. 

 일주문에서 당간지주에 이르는 길을 멋스럽게 장식하고 있답니다.

 부석사 일주문은 두개의 편액을 달고 있습니다.

 소백산 부석사 글구 해동화엄종찰(海東華嚴宗刹)......

 년전에는 해동화엄종찰 대신 봉황산 부석사라는 편액을 이고 있었는데.......

 그 옛날 보았다 하여 그대로 설명하면 거짓이 됩니다.(제가 그랬음)

 뭐 은행나무 길이 아름다운 곳이 많이 있지만 갑사의 그것과 견줄만합니다.

 봄에는 사과 꽃이 만발하니 그 역시.......

 

 (부석사 당간지주 ) 

- 당간지주는 뭐 깃발을 다는 간대를 세우는 또 다른 기둥입니다.

 다만 부석사 당간지주는 크기가 남다르고(4.8미터) 양 지주 사이가 넓어

 다소 퀭한 모습을 보이기도 합니다만 당당한 위용은 신라시대의 작품입니다.

 보물 제 255호라 하는군요.

 

(천왕문)  

- 다포계 맞배지붕을 하고 있는 천왕문입니다.

 천왕문 안에 모셔진 동서남북 사왕천의 구분과 관련하여 제 각각입니다.

 최근 조계종의 공식 교육자료에 지물 구분을 했는데요....

 지국천은 비파, 증장천은 취모검, 광목천은 용, 다문천은 탑이랍니다.

 

(부석사 석축입니다) 

- 부석사 석축을 볼때마다 그 웅장함과 정교함에 고개가 숙여집니다.

 자연상태의 바윗돌과 잔돌을 조화롭게 쌓아 천년세월을 견디게 한 힘은

 기술력일까요?? 아니면 원력일까요?? 아니면 희생일까요??

 

(삼층석탑)

- 부석사 종무소 앞 3층석탑은 본래자리는 아니랍니다.

 뭐 무상함속에 본래 자리 하는 것이 거시기하지만 부석사 동쪽 일명사 터에서

 옮겨왔다는 군요.. 내력이야 그렇다치더라도.....

 탑을 둘러싼 보호철책이 맘에 안듭니다.

 왜 절집 유물 보호철책마다 십자가를 디자인하여 자랑스럽게 설치하는 지 원.....

 그럼에도 석탑 2기는 기단이 안정되고 지붕돌이 담담한 통일신라시대 탑입니다.

 

(범종각고 법종루)

- 안양루 못 미처 범종루가, 그 옆에는 범종각이 있구요.

 각은 1층 건물을, 루는 마루가 있는 2층 건물을 지칭합니다.

 범종각은 연륜이 짧아 따루 설명하긴 그렇구요.

 범종루는 아래에서 보면 팔작지붕이요, 위에서 보면 맞배지붕입니다.

 무량수전 앞에서 부석사를 조망해 보면 범종루 지붕을

 왜 팔작과 맞배지붕을 두루 하였는지 느낌이 옵니다. 느끼세요...

 이는 다른 건물과의 관계, 주변 풍광과의 어울림 등을 고려한 것으로 보입니다.

 특히 범종루는 내외진주와 마루를 받치는 기둥을 조화롭게 배치하였지요.

 

(안양루)

- 안양은 극락의 다른 이름입니다.

 안양루는 천왕문, 범종루 등 지금까지의 서남향 배치에서

 약간 방향을 틀어 정남을 향합니다.

 다포식 팔작지붕으로 무량수 세계(무량수전)를 살짝 가리면서도

 답답하지 않게 드러내 주는 센스 있는 건물이기도 합니다.

 안양루를 올라 뒤돌아 보면 왜 안양(극락)인지를 느낄 수 있습니다.

 석축 계단 위에 무량수전을 살짝 가린 안양루는 오르는 길도 일품이지만

 올라서서 고개를 돌려야 제 맛이 납니다.

 특히 기둥을 액자 삼아 바라보는 너울처럼 파도치는 소백의 영봉은........  

- 관람객이 붐비는 바람에 다소 밋밋한 사진이 되었습니다만

 해질녘이나 운무 덮인 풍광을 담는다면 좋을 듯 합니다.

 그러나 사진에 담기에 앞서 마음에 담아 오시길.......

 

(부석사 석등)

- 부석사 석등은 말이 필요 없을 정도로 간결하고  정갈한 아름다움이 있습니다.

 팔각 간주석(기둥돌)은 말할 것도 없고 기단석의 길쭉한 안상과 오똑한 귀꽃,

 균형잡힌 받침돌과 화사석, 옥개석은 더하고 뺄 것이 없습니다.

 화창 사이사이 새겨진 네 분의 보살님은 그 표정까지는 읽을 수 없지만

 그 모습만으로도 섬세한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습니다.

 특히 석등 앞 배례석은 자주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며 연화문이 선명합니다.

 국보 제 15호라는군요. 

 

(부석사 무량수전)

- 부석사 무량수전을 소개한다는게 어쩐지.......

 시인묵객을 비롯한 수많은 글쟁이들이 읊어댄 무량수전을 감히 뭐하기는 글구요.

 또 공사중이어서 뭐 소감도 따루 많지 않으니 걍 안내만 할랍니다.

 무량수전은 국보 제18호로 고려시대 건축물입니다.

 사실 고려시대 건물은 부석사 무량수전과 조사당, 봉정사 극락전, 수덕사 대웅전,

 무위사 극락보전, 강릉객사 등 몇채가 안남았는 데요.

 그중에서도 가히 뛰어난 건축물이랍니다.

 무량수전은 정면 5칸, 측면 3칸의 주심포식 팔작지붕 형태에 활주를 세웠구요.

 배흘림, 귀솟음, 안쏠림, 안거리곡 등의 목조건축 기법이 망라되었답니다.

 뭰 모를 소리만?? 그래서 설명 들어갑니다.

 배흘림이야 기둥의 중간부위를 굵게한 엔타시스 형식?? 잘 아니께!

 귀솟음은 양 끝 기둥을 가운데 기둥보다 높게 한거구요.

 안쏠림은 기둥을 직각이 아닌 가운데로 약간 쏠리게 세우는 겁니다.

 안거리곡은 지붕 귀퉁이쪽 부재(서까래)를 가운데 서까래 보다 길게 한겁니다.

 이런 기법들은 시각적인 안정성을 위해 행하는 건축기법 이랍니다.

 웅장하면서도 위압하지 않고, 날렵하면서도 가볍지가 않은 거지요.

 

- 전각 안에는 소조여래좌상이 모셔져 있습니다.

 불교를 공부한 분들이 어?? 항마촉지인의 석가모니부처님 이신데??

 소조이니 진흙으로 빚었구요.... 동쪽을 향해 앉아 계시시 서방정토 극락세계에

 계시는 아미타부처님이시랍니다.  뭐 편액두 무량수전이구요..

 아미타부처님이 계시는 전각의 이름은 극락(보)전, 미타전, 무량수전,

 무량광전 등등의 여러 이름이 있습니다.

 그래서 석굴암 부처님이 아미타불이냐 석가모니불이냐 아직도 논쟁중입니다.

 

- 건물관련 소개를 다 드리지는 못하구요.

 천장의 형태가 무량수전은 서까래가 드러나는 연등천장이구요...

 아래 사진(안양루)은 우물정(井)자 형태라 우물천장 이라 한답니다.  

   

(부석사 부석과 선묘)

- 부석과 선묘각은 창건주이신 의상스님과 당나라 선묘낭자의 사랑이야기입니다.

 의상스님이 원효스님과 함께 당나라 유학길에 오릅니다만

 원효스님은 해골에 담긴 물 한 바가지를 마시고 깨달음을 얻습니다.

 원효를 남겨두고 유학길에 오른 의상은 아릿따운 선묘낭자를 만나게 되고 

 으악새 슬피우는 가을날 선묘의 이루어질 수 없는 짝사랑이 시작됩니다.

 화엄종의 2조 지엄스님 회상에서 화엄학을 우수한 성적으로 공부한 의상스님은

 서기 670년 당나라가 신라를 침공한다는 첩보를 입수하자 

 불타는 애국심을 어찌하지 못하고 귀국길에 오릅니다.

 이 소식을 들은 선묘가 뒤를 쫓았으나 의상을 태운 배는 바다 저멀리 입니다.

 안타까운 마음에 의상스님을 위해 준비한 옷가지가 담긴 보따리를 바다에 던지며

 의상스님께 전해줄 것을 서원합니다.

 뒤 이어 의상스님의 디딤돌이 되기를 서원한 선묘는 바다에 몸을 던저 용이되고

 바라던 대로 의상스님의 귀국길을 안전하게 도와줍니다.

 의상스님이 소백산 자락 부석사 위치가 천하 길지임을 알고 절집을 지으려 하나

 500여 도둑(혹은 불량배)의 무리들이 훼방을 합니다.

 이에 선묘용은 다시 커다란 바위가 되어 하늘을 날며 도둑의 무리를 제압합니다.

 그리고 뜬바위가 되어, 무령수전 앞마당의 석룡이 되어 부석사를 지킵니다.

 이 장한 사랑에 감읍한 부석사에서는 선묘각을 지어 조석공양을 올립니다.

 이와 같은 전설은 서산 부석사에도 똑 같이 전해옵니다.

 

(삼성각 가는길 여래좌상과 삼성각)

- 무량수전 오른쪽 부석 아래로 발길을 옮기면

 새로 모셔진 여래좌상과 삼성각을 만나게 됩니다.

 여래좌상은 항마촉지인을 하고 비바람을 온 몸으로 맞고 계십니다.

 좀 더 내려가면 삼성각이 있는데요...

 일전의 고졸한 맛에 더하여 문을 새 것으로 갈았습니다.

 가운데 문은 꽃살을 양 옆은 빗살을 했는데 퇴색한 단청과 묘한 조화를 이룹니다.

 

(혜곡 최순우 선생이 칭송하신 부석사 전망입니다)

 

- 혜곡선생께서는 책 제목마저 "무량수전 배흘림 기둥에 기대서서"라고 지으실

 정도로 무량수전과 그 앞에서 바라보는 풍광을

 사무칠 정도로 아름답게 설하셨습니다만....

 걍 느끼시길 바랍니다.

 

(부석사 삼층석탑)

- 무량수전 왼쪽으로 3층 석탑은 자인당 석불과 함께 폐사지에서 옮긴 것입니다.

 다만 위치가 대개의 절집 배치와 달라 애매하기는 합니다만

 아마도 무량수전의 아미타불이 동쪽을 향하고 있기 때문에 그리 한것이 아닌가?

 그럼에도 생김생김은 모자람이 없구요, 앞의 화사석 없는 석등과도 어울립니다.

 

(조사당과 선비화, 취현암입니다)

- 조사당은 당근 의상스님을 모신 전각이구요.

 그럼에도 간단치 않은 것은 무량수전과 함께 고려시대 건축물이기 때문이지요.

 정면 3칸, 측면 1칸의 아담한 맞배지붕에 소담한 건물입니다.

 중요한 것은 조사당에 가득한 고려시대의 벽화입니다.

 물론 지금은 박물관에 고이 모셔두고 있구요.

 앞의 선비화라 이름지어진 골담초는 의상스님의 지팡이라고 합니다.

 근데 골담초에 물을 주는지? 아닌지? 물어보고 싶었답니다.

 

- 조사당 옆 취현암은 1997년 복원하여 선방으로 활용하고 있답니다.

 문은 싸리문으로 굳게(?) 닫혀있구요......

 

(단하각과 응진전 글구 자인당입니다)

- 자인당 가는길 보리수나무 위쪽에 1칸짜리 작은 건물이 있는데 단하각입니다.

 안에는 스님께서 생쥐인지 담비인지 정확치 않은 짐승 한마디를 들고 있구요. 

 단하각의 단하스님은 육조시대에 단하소불(丹霞燒佛)의 고사로 유명하지요.

 단하 스님은 날씨가 춥자 목불을 쪼개 불을 피웠구요,

 야단치는 주지스님에게 "목불이 부처라면 사리를 찾는다" 하면서

 아궁이를 뒤져 사리를 찾는 시늉을 하여 선사의 면모를 보이셨다 합니다.

 가히 살불살조(殺佛殺祖)의 기개가 아닌가 합니다.

 

- 옆의 응진전은 일반 절집의 나한전 또는 영산전 정도로 이해 하시면 됩니다.

 다만 자인당은 건물은 보통이지만 안에는 주변 폐사지에서 모셔온

 석불 세 분이 단정하게 앉아 계십니다.

 가운데는 항마촉지인의 아미타불, 좌우에는 지권인을 한 비로자나불 이십니다.

 특히 양쪽 비로자나불의 광배는 눈여겨 보셔도 좋을 듯.......

 

(부석사 보리수나무)

- 보리수나무야 잘 아시겠지만 막상 나무를 보면 알쏭달쏭합니다.

 특히 부석사 보리수나무는 오솔길 옆에 다른 나무와 어울려 있어

 그냥 지나치기 십상이구요, 그래서 있는 줄도 모르는 경우가 태반입니다.

 보리자 염주는 누구가 지니고 싶을 정도로 가치를 인정받고 있습니다.

 이는 물질적 가치라기 보다는 석가모니불께서 보리수 나무 아래에서 성불하신

 그것과 관련이 깊지 않을까 합니다.  

 

(장경각, 지장전, 설법전, 박물관)

 

- 장경각, 지장전, 설법전, 박물관 등은 최근에 지어진 건물입니다.

 다만 아쉬운 것은 부석사 말고도 여러 절집에서 박물관 이름만 붙여놓고

 개관을 안하니 갈 때마다 아쉬움만 큽니다.

 

(소소한 재미를 찾아) - 작은 바가지와 소원을 이고 있는 기와

- 절집마다에는 소소한 재미를 주는 풍경이 있습니다.

 범종루 앞 감로수가 흐르는 곳에 걸린 바가지는 목마른 이의 목을 축여주고

 무량수전 옆 소지장은 영가의 위패를 소각하는 곳인 아닌가 합니다.

 누군가의 소원을 안고 수백년을 이어갈 기와가

 누군가의 이름을 새긴 채 또 다른 불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수고로움이 있기에)

- 부도를 찾아 헤매던 중 이서 거사님들께서 공양 뒷 정리를 하고 계십니다.

 남은 공양물과 그릇 등을 수레 두 개에 옮기고 계시더군요. 뭐 저두 거들어야죠.

 보이지 않는 곳에서 수고하신 이들이 있기에.......

 

- 이제 발길을 돌리려 합니다. 

 부석사는 오늘도 공사중이었지만 소란함 속에서도

 바래버린 단청과 곰삭은 기둥에서, 천년을 이어온 석축에서

 곱게 늙는 다는 것이 어떤 것인가를 일깨우는 소중한 기회가 되었습니다.

 무상한 세월속에 본질을 잃지 않는다는 것!!!

 당신은 곱게 늙어가고 있습니까????

 

        혜림이 쓰다..